좋은 사람들 - 세상의 좋은 이야기들을 모은 곳
글 수 3,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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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4 12:08:47 (*.235.244.38)
오널은~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날이라고 합니다.ㅎ~
유래는..?
정확히 몰러~~요~ㅎ
울 님들~행복한 날 되시어요.^^*
사랑합니다.*^^*
2006.02.14 13:22:30 (*.197.250.75)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누구나가 나이는 먹는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떤 한 시기에 달성되어야만 할 것이
달성되지 못한채
그 시기가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中-
thanks 고운초롱님~!
2006.02.14 13:48:20 (*.235.244.38)
정말이지..
내 책임이 아니쪄..
암튼~
정말이지~
나이가 들어가니~
가슴이 서늘 해져서 서러움도 배가 되는 것 가토용~ㅎ
늘~
변함없는 애정어린 마음~
남겨주시는~
an 칭구님께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안뇽~ㅎ
2006.02.14 16:56:11 (*.252.132.205)
chocolate 연표
400년경 유카탄에서 마야족이 처음으로 카카오나무 재배를 시작한다
500년경 과테말라 발굴 때 대규모로 발견된 흔적에서 카카오 음료가 증명된다.
900경 톨넥 족의 왕 케트살코아틀은 신성화되고, 아스텍족은 그를 초콜릿의 왕으로 숭배한다.
1502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과나자 섬에 도착하고 카카오 열매를 선물받는다.
1519 에르난 코르테스가 멕시코 연안에 상륙하여 아스텍 왕국을 점령한다. 콩키스타도르들은 카카오 음료를 발견한다.
1528 에르난 코르테스가 샤를 캥트에게 카카오 열매와 함께 초콜릿 제조에 필요한 재료들을 가져간다.
1569 액상 초코릿(코코아)이 금식을 깨는 음식인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교회 내에서 분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1580 스페인에 정기적으로 카카오 열매가 공수되기 시작하면서 초콜릿 수공업자가 생겨난다.
플랑드르 사람들이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초콜릿을 발견한다.
1591 후안 데 카르데나스가 건강에 관련된 초콜릿의 효과에 대해서 최초의 의학 서적을 집필한다.
1606 상인 안토니오 카를레티가 카카오 음료의 유행을 스페인에서부터 이탈리아에 소개한다
1615 루이 13세는 스페인의 펠리페 3세의 딸 안도트리슈와 결혼하고, 초콜릿 음료를 좋아했던 그녀는 이것을 프랑스 궁정에 소개한다
1. 전설에서 역사까지
A. 신세계의 갈색 금
'초콜릿'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분명하고 오늘날까지도 의문점이 많이 남아 있지만, 멕시코의 아스텍족으로부터 이 음료가 전해졌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아스텍의 켓살코아틀은 낙원의 정원사였다. 아스텍족은 켓살코아틀을 카카오나무를 지키는 자로 숭배했는데, 그는 힘과 행운을 관장하는 자이기도 했다. 카카오 나무의 열매는 아스텍족에게 균등하게 배분되었으며, 소비재를 얻기 위한 도구로 쓰이거나 왕에게 바치는 공물의 용도로 쓰였다.
열매를 모아 두고 그 신선한 열매의 내용물을 빨아먹는 원숭이나 다람쥐를 발견함으로써 인간은 처음으로 그 맛을 경험했다.
그러면 어떻게 그 씨(카카오 콩)를 반죽상태(페이스트)로 만들기 위해 갈거나 찧어 볼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아무도 알수 없지만 아스텍의 세련된 문명은 차츰 카카오 반죽에 향신료를 가미하면서 영양가 있고 원기를 회복시키는 음료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카카오에 옥수수를 곁들이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용한 음식이 되었고, 아스텍의 왕 몬테수마 2세에게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음료가 되었다.
1502년 인디언 추장에게서 카카오 열매를 선사받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그 열매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는 단지 정복만 생각했을 뿐'새로운 스페인(신대륙)' 사람들의 관습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무시했던 것이다. 카카오 열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초콜릿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에르난 코르테스와 그의 부하들이 '서인도'를 정복할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콩키스타도르(정복자)는 엘도라도를 찾아 떠났다. 그는 놀라운 '갈색 금', 곧 카카오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이 기름지고 향이 강하며 쓴맛이 나는 음료의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와인이 떨어졌을때에 대비하는 여분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 뒤 사탕수수 자당으로 부드러워진 초콜릿 음료가 영양분이 풍부한것은 물론 성욕을 상진시키는 효능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초콜릿은 그들의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은 카카오나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숭배함으로써 그 나무의 상징적힘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얼마 안있어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된 이 음료를 광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카돌릭 교회 사람들은 초콜릿 음료가 단식의 중단을 의미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 오랫동안 논쟁을 벌였다. 특히 성직자들이 육식을 할수없는 날에 이 음료를 많이 마셨기 때문이다.
B. 유럽정목
1528년 코르테스는 샤를 캥트에게 최초로 카카오 열매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이 진귀한 보배를 간직했던 콩키스타도르가 카카오 열매를 스페인으로 보낸것은 1580년대의 일이었다. 그때 초콜릿 제조공장이 스페인-포르투칼 반도에 들어섰고 여행객의 호기심과 무역, 왕가의 결혼을 통해 귀족 음료인 코코아가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
플랑드르(오늘날 프랑스의 노르, 벨기에의 플랑드르, 네덜란드의 젤란트에 있었던 중세의 공국:역자0와 네덜란드(ㄷㅇ시에는 스페인 왕 펠리페2세의 소유였음) 의 무역항에서는 스페인이 욕심스럽게 보유한 카카오 제조법을 알지 못하다가 16세기 말이 되어서야 이 부드러운 음료를 발견했다. 카카오 제조법은 1606년 안토니오 카를레티에 의해서 스페인에 알려졌다. 이탈리아의 의사들은 코코아를 강장제로서 신속하게 받아들였다.
프랑스의 경우 유대인 초콜릿 제조업자들은 스페인에 이어 포르투갈에서 쫓겨나온 바욘에 정착한뒤 1609년에 이 감미로운 음료를 만들었다는 설이 오랫동안 확실한 것으로 여겨져 오긴 했지만 아무 근거가 없다.
프랑스에서 카카오를 공식적으로 수입하는 것에 기여한 사람은 1615년 루이 13세와 결혼을 한 스페인 왕 펠리페 3세의 딸 안도트리슈였다. 초콜릿은 루이 14세 때에 베르사유에서 유행하기 시작해서 루이 15세 때 성행했다. 프랑스 최초의 초콜릿 제조업자였던 다비드 카유는 29년간 초콜릿 액과 드롭스를 사고팔 특권을 얻었다. 그는 1671년에는 '마시는 초콜릿:코코아'를 파는 가게를 파리에 최초로 열였다.
알프스를 건너 이탈리아에서 온 어느 학자가 1640년에 오스트리아에 소개한 뒤 초콜릿은 수도사들의 도움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또 다른 학자는 1641년에 귀중한 초콜릿 제조법을 가지고 나폴리에서 고향 독일로 돌아왔다.
또 167년에 영국으로 들어온 초콜릿은 얼마 뒤 당시에 유행하던 커피와 우열을 다투게 되었다. 1674년이 되면서 판형 초콜릿이 '스페인식 푸딩'으로 팔리면서 대중적은 당과류로 자리잡았다.
1697년에 는 런던에 새로운 유행 음료를 파는 '초콜릿 하우스' 라는 화려한 건물이 들어섰다. 스위스에는 1750년에서야 이탈리아 상인을 통해 초콜릿이 유입됨으로써 유럽에서 초콜릿을 가장 나중에 안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초콜릿이 전 유럽에 걸쳐 대중화되고 풍부한 기술력 향상으로 확실하게 성공을 거둔 것은 1세기 반이 더 지난 뒤였다.C. 현대혁명
18세기 말 약제사들은 초콜릿을 의학적 용도로 만들기 위해 초콜릿 공장을 세웠으나 2세기 동안은 소규모 수공업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수력 에너지와 증기기관의 발전으로 19세기 초에 저렴한 가격으로 초콜릿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자 비로소 특수 산업으로서의 발전을 도모하게 되었다.
설탕과 카카오의 가격 인하와 생활수준의 향상, 생산비의 절감으로 초콜릿의 대중화가 가능해진 20세기 초에는 초콜릿이 아침 식사와 어린이 간식의 기본 메뉴가 되었다. 크니에와 풀랭은 프랑스 초콜릿 산업의 선구자로서 초콜릿을 일반 대중에게 보급했다.
좋은 품질을 고수한 에밀 쥐스탱 므니에는 본사에서 지사를 모두 관장하고 재배에서부터 상점에 깔릴 때까지 전 관정에 관여하는 전략을 세웠다. 므니에는 전략적이며 선진적인 운영체계를 갖추고 사원들의 복지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경영자였다. 빅토르 오귀스탱 풀랭은 정교함과 저가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면서 늘 선두에서 기술의 진보를 주도해야 한다고 상조했고, 광고 분야에서도 혁신을 일으켰다.
유럽 밖에서는 또 다른 창의적 사고가 초콜릿 제조업계를 뒤흔들었다.
1825년 네덜란드의 반 후텐은 카카오 추출액에서 카카오 분말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정리해서 초콜릿 용해 기술을 완성시켰다. 스위스의 페터는 1875년에 처음으로 밀크 초콜릿을 만들었고, 이탈리아의 카파렐리는 개암과 아몬드를 넣은 초콜릿 제조법 지아주아를 개발했다. 또 벨기에의 누하우스는 프랄랭 외ㅔ도 주머니 형태에 착안해서 초콜릿 봉봉을 포장하는 작은 상자의 전통을 만들어냈다. 스위스의 쉬샤드는 특히 유명한 밀크 초콜릿 밀카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400년경 유카탄에서 마야족이 처음으로 카카오나무 재배를 시작한다
500년경 과테말라 발굴 때 대규모로 발견된 흔적에서 카카오 음료가 증명된다.
900경 톨넥 족의 왕 케트살코아틀은 신성화되고, 아스텍족은 그를 초콜릿의 왕으로 숭배한다.
1502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과나자 섬에 도착하고 카카오 열매를 선물받는다.
1519 에르난 코르테스가 멕시코 연안에 상륙하여 아스텍 왕국을 점령한다. 콩키스타도르들은 카카오 음료를 발견한다.
1528 에르난 코르테스가 샤를 캥트에게 카카오 열매와 함께 초콜릿 제조에 필요한 재료들을 가져간다.
1569 액상 초코릿(코코아)이 금식을 깨는 음식인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교회 내에서 분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1580 스페인에 정기적으로 카카오 열매가 공수되기 시작하면서 초콜릿 수공업자가 생겨난다.
플랑드르 사람들이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초콜릿을 발견한다.
1591 후안 데 카르데나스가 건강에 관련된 초콜릿의 효과에 대해서 최초의 의학 서적을 집필한다.
1606 상인 안토니오 카를레티가 카카오 음료의 유행을 스페인에서부터 이탈리아에 소개한다
1615 루이 13세는 스페인의 펠리페 3세의 딸 안도트리슈와 결혼하고, 초콜릿 음료를 좋아했던 그녀는 이것을 프랑스 궁정에 소개한다
1. 전설에서 역사까지
A. 신세계의 갈색 금
'초콜릿'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분명하고 오늘날까지도 의문점이 많이 남아 있지만, 멕시코의 아스텍족으로부터 이 음료가 전해졌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아스텍의 켓살코아틀은 낙원의 정원사였다. 아스텍족은 켓살코아틀을 카카오나무를 지키는 자로 숭배했는데, 그는 힘과 행운을 관장하는 자이기도 했다. 카카오 나무의 열매는 아스텍족에게 균등하게 배분되었으며, 소비재를 얻기 위한 도구로 쓰이거나 왕에게 바치는 공물의 용도로 쓰였다.
열매를 모아 두고 그 신선한 열매의 내용물을 빨아먹는 원숭이나 다람쥐를 발견함으로써 인간은 처음으로 그 맛을 경험했다.
그러면 어떻게 그 씨(카카오 콩)를 반죽상태(페이스트)로 만들기 위해 갈거나 찧어 볼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아무도 알수 없지만 아스텍의 세련된 문명은 차츰 카카오 반죽에 향신료를 가미하면서 영양가 있고 원기를 회복시키는 음료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카카오에 옥수수를 곁들이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용한 음식이 되었고, 아스텍의 왕 몬테수마 2세에게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음료가 되었다.
1502년 인디언 추장에게서 카카오 열매를 선사받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그 열매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는 단지 정복만 생각했을 뿐'새로운 스페인(신대륙)' 사람들의 관습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무시했던 것이다. 카카오 열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초콜릿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에르난 코르테스와 그의 부하들이 '서인도'를 정복할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콩키스타도르(정복자)는 엘도라도를 찾아 떠났다. 그는 놀라운 '갈색 금', 곧 카카오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이 기름지고 향이 강하며 쓴맛이 나는 음료의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와인이 떨어졌을때에 대비하는 여분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 뒤 사탕수수 자당으로 부드러워진 초콜릿 음료가 영양분이 풍부한것은 물론 성욕을 상진시키는 효능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초콜릿은 그들의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은 카카오나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숭배함으로써 그 나무의 상징적힘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얼마 안있어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된 이 음료를 광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카돌릭 교회 사람들은 초콜릿 음료가 단식의 중단을 의미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 오랫동안 논쟁을 벌였다. 특히 성직자들이 육식을 할수없는 날에 이 음료를 많이 마셨기 때문이다.
B. 유럽정목
1528년 코르테스는 샤를 캥트에게 최초로 카카오 열매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이 진귀한 보배를 간직했던 콩키스타도르가 카카오 열매를 스페인으로 보낸것은 1580년대의 일이었다. 그때 초콜릿 제조공장이 스페인-포르투칼 반도에 들어섰고 여행객의 호기심과 무역, 왕가의 결혼을 통해 귀족 음료인 코코아가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
플랑드르(오늘날 프랑스의 노르, 벨기에의 플랑드르, 네덜란드의 젤란트에 있었던 중세의 공국:역자0와 네덜란드(ㄷㅇ시에는 스페인 왕 펠리페2세의 소유였음) 의 무역항에서는 스페인이 욕심스럽게 보유한 카카오 제조법을 알지 못하다가 16세기 말이 되어서야 이 부드러운 음료를 발견했다. 카카오 제조법은 1606년 안토니오 카를레티에 의해서 스페인에 알려졌다. 이탈리아의 의사들은 코코아를 강장제로서 신속하게 받아들였다.
프랑스의 경우 유대인 초콜릿 제조업자들은 스페인에 이어 포르투갈에서 쫓겨나온 바욘에 정착한뒤 1609년에 이 감미로운 음료를 만들었다는 설이 오랫동안 확실한 것으로 여겨져 오긴 했지만 아무 근거가 없다.
프랑스에서 카카오를 공식적으로 수입하는 것에 기여한 사람은 1615년 루이 13세와 결혼을 한 스페인 왕 펠리페 3세의 딸 안도트리슈였다. 초콜릿은 루이 14세 때에 베르사유에서 유행하기 시작해서 루이 15세 때 성행했다. 프랑스 최초의 초콜릿 제조업자였던 다비드 카유는 29년간 초콜릿 액과 드롭스를 사고팔 특권을 얻었다. 그는 1671년에는 '마시는 초콜릿:코코아'를 파는 가게를 파리에 최초로 열였다.
알프스를 건너 이탈리아에서 온 어느 학자가 1640년에 오스트리아에 소개한 뒤 초콜릿은 수도사들의 도움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또 다른 학자는 1641년에 귀중한 초콜릿 제조법을 가지고 나폴리에서 고향 독일로 돌아왔다.
또 167년에 영국으로 들어온 초콜릿은 얼마 뒤 당시에 유행하던 커피와 우열을 다투게 되었다. 1674년이 되면서 판형 초콜릿이 '스페인식 푸딩'으로 팔리면서 대중적은 당과류로 자리잡았다.
1697년에 는 런던에 새로운 유행 음료를 파는 '초콜릿 하우스' 라는 화려한 건물이 들어섰다. 스위스에는 1750년에서야 이탈리아 상인을 통해 초콜릿이 유입됨으로써 유럽에서 초콜릿을 가장 나중에 안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초콜릿이 전 유럽에 걸쳐 대중화되고 풍부한 기술력 향상으로 확실하게 성공을 거둔 것은 1세기 반이 더 지난 뒤였다.C. 현대혁명
18세기 말 약제사들은 초콜릿을 의학적 용도로 만들기 위해 초콜릿 공장을 세웠으나 2세기 동안은 소규모 수공업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수력 에너지와 증기기관의 발전으로 19세기 초에 저렴한 가격으로 초콜릿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자 비로소 특수 산업으로서의 발전을 도모하게 되었다.
설탕과 카카오의 가격 인하와 생활수준의 향상, 생산비의 절감으로 초콜릿의 대중화가 가능해진 20세기 초에는 초콜릿이 아침 식사와 어린이 간식의 기본 메뉴가 되었다. 크니에와 풀랭은 프랑스 초콜릿 산업의 선구자로서 초콜릿을 일반 대중에게 보급했다.
좋은 품질을 고수한 에밀 쥐스탱 므니에는 본사에서 지사를 모두 관장하고 재배에서부터 상점에 깔릴 때까지 전 관정에 관여하는 전략을 세웠다. 므니에는 전략적이며 선진적인 운영체계를 갖추고 사원들의 복지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경영자였다. 빅토르 오귀스탱 풀랭은 정교함과 저가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면서 늘 선두에서 기술의 진보를 주도해야 한다고 상조했고, 광고 분야에서도 혁신을 일으켰다.
유럽 밖에서는 또 다른 창의적 사고가 초콜릿 제조업계를 뒤흔들었다.
1825년 네덜란드의 반 후텐은 카카오 추출액에서 카카오 분말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정리해서 초콜릿 용해 기술을 완성시켰다. 스위스의 페터는 1875년에 처음으로 밀크 초콜릿을 만들었고, 이탈리아의 카파렐리는 개암과 아몬드를 넣은 초콜릿 제조법 지아주아를 개발했다. 또 벨기에의 누하우스는 프랄랭 외ㅔ도 주머니 형태에 착안해서 초콜릿 봉봉을 포장하는 작은 상자의 전통을 만들어냈다. 스위스의 쉬샤드는 특히 유명한 밀크 초콜릿 밀카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2006.02.14 18:00:26 (*.235.244.38)
붕어빵님.
워~~~~따~ㅎ
"발렌타인 데이"의 유래의 글..고맙습니다.ㅎ~
그란디~
울 "좋은사람들방"에 만물 박사님 이십니다.요~^^
나~ 너 좋아해~너~ 나 좋아해~
붕어빵님 따랑합니다.ㅎ~
오널도~
사랑한다는 말을..너모 남발 한것은 아닌지~~?
ㅋㅋㅋ~
구레둥~사랑은 좋은 거 잖아여~~ㅎ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포근한 저녁~
님의 고운 맘처럼 달콤한 저녁이 되세용~~.. *^^*~~♡
워~~~~따~ㅎ
"발렌타인 데이"의 유래의 글..고맙습니다.ㅎ~
그란디~
울 "좋은사람들방"에 만물 박사님 이십니다.요~^^
나~ 너 좋아해~너~ 나 좋아해~
붕어빵님 따랑합니다.ㅎ~
오널도~
사랑한다는 말을..너모 남발 한것은 아닌지~~?
ㅋㅋㅋ~
구레둥~사랑은 좋은 거 잖아여~~ㅎ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포근한 저녁~
님의 고운 맘처럼 달콤한 저녁이 되세용~~.. *^^*~~♡
2006.02.14 19:10:06 (*.176.172.180)
음악 조~오코...
초롱님. 실속있어 아주 좋네요.
초콜릿은 먹으면 이빨 썩기두하구 또한 중년엔 당뇨에도 조심해야죠?
초콜릿 대신에 떡이라!
방장님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을 느끼며~
떡 한입에 가득 넣구 가렵니다.
초롱님. 실속있어 아주 좋네요.
초콜릿은 먹으면 이빨 썩기두하구 또한 중년엔 당뇨에도 조심해야죠?
초콜릿 대신에 떡이라!
방장님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을 느끼며~
떡 한입에 가득 넣구 가렵니다.
2006.02.14 22:11:43 (*.238.105.179)
반글라님.
역쉬~우리 민속음식이 최고지여~?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포근한 하루였네여~
행복한 "발렌타인 데이" 보내셨어여?
오널도~ 낼도~
변함없이 듣고 시픈말~
너 너 좋아해~너 나 좋아해~
반글라님. 마니~마니 좋아합니다.ㅎ
아름다운 밤 되세여~꾸~벅~ㅎ
역쉬~우리 민속음식이 최고지여~?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포근한 하루였네여~
행복한 "발렌타인 데이" 보내셨어여?
오널도~ 낼도~
변함없이 듣고 시픈말~
너 너 좋아해~너 나 좋아해~
반글라님. 마니~마니 좋아합니다.ㅎ
아름다운 밤 되세여~꾸~벅~ㅎ
2006.02.15 14:47:35 (*.226.207.212)
초롱님^^
몇일 결근했더니만 먹을것 하나도 없구만유~~~
반글라님께서 다 드시고 갔나벼...
그래도 음악이 장고를 반겨주네요....고맙수^^
몇일 결근했더니만 먹을것 하나도 없구만유~~~
반글라님께서 다 드시고 갔나벼...
그래도 음악이 장고를 반겨주네요....고맙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