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진

 

  가을에는 모든 것 다 용서하자.

 

  기다리는 마음 외면한 채

  가고는 오지 않는 사람을

  생각하지 말고 그만 잊어버리자.

 

  가을의 불붙는 몸에  이끌려

  훨훨 벗고 산 속으로 가는 사람을

  못 본 척 그대로 떠나보내자.

 

  가을과 겨울이 몸을 바꾸는

  텅 빈 들판의 바람소리 밟으며

  가을에는

  빈손으로 길을 잊어버리자.

 

  따뜻한 사람보다 많은 냉정한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미운 사람들을

  한꺼번에 모두 잊어버리자.

 

  한 알의 포도 알이 술로 익듯

  살아갈수록 맛을 내는 친구를 떠올리며

  강처럼 깊어지자.

 

  살아가며 우리가 만나야 했던 미소와 눈물,

  혼자 있던 외로움 하나하나 배낭에 챙겨 넣고

  가을에는

  함께 가는 이 없어도 좋은

  여행을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