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엽서 - 대한민국 60년] 가족계획


'영구불임시술자 우대' 아파트 분양도

'무턱대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기르자',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내 힘으로 피임하여 자랑스런 부모되자', '신혼부부 첫 약속은 웃으면서 가족계획', '적게 낳아 엄마건강 잘 키워서 아이건강',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출산율 높이는 게 국가의 미래 사활이 걸린 문제로 인식되는 요즘이지만, 여성 1명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합계출산율 6명을 절반으로 낮추기 위해 1960년대 중반에는 '3명 자녀를 3년 터울로 낳고 35세 이전에 단산하자'는 3·3·35 캠페인이 시행됐다. 그러나 출산율 세계 최저 수준인 지금은 결혼 후 1년 내 임신하고 2명의 자녀를 30세 이전에 낳자는 1·2·3 캠페인이다. '한 자녀보다는 둘, 둘보단 셋이 더 행복합니다.'

1960년대 초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가족계획사업을 포함시킨 정부의 노력은 이후 20년 넘게 필사적이었다. 가족계획요원들이 방방곡곡에서 교육과 피임술 보급에 나섰고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무료로 받으면 훈련을 면제해주기도 했다. 가족계획사업을 둘러싸고 시골마을에서 일어나는 웃지 못할 일들이 펼쳐지는 영화 '잘 살아보세'(2006)에서 마을 이장 변석구(배우 이범수)는 정관수술하고 받은 돈으로 사간 고기를 맛있게 먹는 자식들을 보며 말한다. '지 애비 XX 묶은 돈으로 잘도 처먹는다!'
주공 반포아파트 청약 열기를 다룬 1977년 9월 15일자 조선일보 기사는 또 어떤가. '아파트 분양에 불임인파. 시술자끼리 경쟁. 현장에서 부인 병원 보내 수술받기도.' 당시 불임시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후순위를 받은 박모씨(71)의 하소연은 이랬다. "45세 이상 사람들은 효과 없다고 보건소에서 무료 시술을 해주지 않는다. 늙은 사람은 아파트에 살아보기도 힘들게 됐다." 공공 부문 건설 아파트 청약에서 영구불임시술자를 우대키로 한 탓에, 영구불임시술자 명의 청약통장에 프리미엄 20만원이 추가로 붙던 그 시절이다.

'폐경기 여성도 불임시술해야 하느냐'는 문의가 빗발쳤다는 그때로부터 20년 지난 1997년에 와서야 영구불임시술자 우대조치가 삭제됐으니, 합계출산율이 72년 4.14명, 82년 2.42명, 92년 1.78명 급기야 2002년 세계 최저 수준인 1.17명으로 감소하는 사이 정부 정책은 또 그렇게 뒤늦기만 했던 것인가. 무릇 시대의 변화는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의 시골 민방위 훈련 시간처럼 잠깐이다. '한시버텀 니 시간 인디, 출석 부르는 디 한 시간, 담배 참 한 시간, 부랄 까라는 소리(정관 수술 권고)루 한 시간씩 잡어먹다 보면 잠깐인걸 뭐.'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윤천금-천사같은 아내

출처 : 조선일보 2008.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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