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사는 이유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 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 웃음이

생각 나면 구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창 밖에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은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이 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