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엽서 - 대한민국 60년] 주산


은행부터 동네가게까지 주판은 '필수품'


"가끔은 주판알을 톡톡 튀기며 계산을 해보고픈 생각도 든다. 어릴 때 주산학원에 다녔던 기억이 난다. 몇 급까지 땄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주판알의 느낌은 생생하다. '234원이요, 546원이요, 톡톡톡톡.' 주산을 하려면 연필을 ㅅ ㅐ ㄲ ㅣ(금지단어라서 풀어 씀)손가락 앞에 끼운 채로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야 한다. (…) 가끔 다시 주산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문구점에 가서 물어 본다. '주판 있나요?' 당연히 없다." 소설가 김정희의 '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회사 회계업무에서 주산이 필수인데다가 어린이 두뇌개발과 산수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던 시절, 많은 초등학생들이 방과 후 주산학원으로 향했다. 주판 두 개를 양발 밑에 뒤집어 깔고 방바닥 스케이트 놀이를 하다 야단맞던 그 시절이다. 금융기관과 일반 기업은 물론 동네가게에서도 주판은 필수 기기였고 가계부 쓰는 데도 필수 반려였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해 지점장을 지내고 은퇴한 한 60대의 회고담.
"은행 취직해서 새로 장만했던 주판을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주판을 더 이상 쓰지 않게 됐을 때도 직장 사무실 책상에 늘 주판을 넣어두었지요.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주판은 제 보물 1호였습니다. 상고 학생들이 주산에 임하는 자세는 진지하다 못해 절박했습니다. 은행에서는 주산을 잘 못하는 대졸 사원들이 따로 학원을 다니는 경우도 제법 있었어요."

70, 80년대 우리나라는 주산 강국이었다. 주산 관련 세계대회를 석권한 것은 물론, 주산과 짝을 이루는 암산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달인들을 배출했다. 1976년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국제계산기능올림픽에서, 최고 12단위까지의 더하기·빼기·곱하기·나누기 20문제의 정답을 1분45초 만에 맞춰 우승한 당시 서울여상 3학년 이춘덕씨(50)가 대표적이다. 2학년 때 우리나라 최초의 주산 10단이 된 이춘덕씨는 70, 80년대 각종 국내외 대회를 석권한 주산 스타이자 5초 만에 10만 단위 숫자 2개의 곱셈 정답을 정확히 계산해낸 암산의 달인이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전자계산기의 보급 확대로 주산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90년대 초부터 은행에서도 주판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대한상공회의소가 주관한 주산급수능력시험과 자격증은 90년대 중반 없어졌으며, 2001년 노동부 국가기술자격시험에서 주산부기시험이 폐지됐고 초등학교 '산수' 교과서에서도 2002년부터 사라졌다. 1945년 창업해 3대째 주판을 만들고 있는 고려주판은 이제 계산용 23줄 주판이 아니라 어린이 수(數) 교육용 11줄, 13줄 컬러 주판 생산에 주력하고 있으니, 주판은 사라졌으되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할까.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상단 프래시 음악 삽입

출처 : 조선일보 2008.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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