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옛 추억의 사진을 올리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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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과 키스 도중 애국가가 울린다면? 아침 애국조회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하굣길 동네 삼류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 스크린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기립했다가 착석. 영화 보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마침 오후 5시(또는 6시)가 되니 관공서나 학교 스피커에서 나오는 애국가에 맞춰 부동자세. 집에 와서 TV를 시청하다 방송 종료 시각이 되자 화면에 펄럭이는 태극기와 애국가. 꾸벅꾸벅 졸다가 자동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오늘의 마지막 국민의례를 행한다. 하루에 네 차례 국민의례를 거행한 애국 시민이 되는 셈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도중 국기하강식이 벌어지면 멈춰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자동차 안에 앉아가는 사람은 차 밖으로 나와 기립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애인과 키스 도중 국기하강식이 벌어지면 키스를 중단하고 기립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국기가 보이지는 않고 애국가만 들리면 어느 방향으로 서야 하나? 각각의 다양한 상황마다 국기하강식에 대한 고민도 다양했다. "누구도 움직일 수 없다. 피어나던 꽃들이 고개 숙이고 꿀벌처럼 뛰어가던 아이들도 일제히 멈춰 서서 경례를 붙인다.…멀리 날아갈 준비에 부푼 아이들아, 움직일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바람을 놓아주고, 들풀이 고개 들어 온 세상 풀씨를 날린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무궁한 발전을 약속받은 아이들아, 이제 보이느냐, 국기 게양대 위로 너희가 날아야 할 푸른 하늘이." 수원 창현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시인 나희덕이 1988년에 발표한 '경례하는 아이들'의 일부다. 1989년 1월에 국기하강을 위한 라디오방송과 영화관에서의 국민의례가 폐지됐고 국기하강식은 공공기관 및 학교 자체방송을 통해서 실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사실상의 폐지였다. 글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출처 : 조선일보 2008.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