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향기를 어찌 소유할 수 있겠는가?
마음속 숨은 사랑을 어찌 소유할 수 있겠는가?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새들은 하늘을 건너는데
비어 있는 허공을 어찌 소유할 수 있겠는가?
흘러가는 강물을 어찌 소유할 수 있겠는가?


    한 송이 꽃도 사랑을 받지 못하면 시드는 법이다. 사랑이란 말을 정성으로 바꿔 말해도 무방하리라. 정성을 다해 키운 화초는 이파리에 윤기가 흐르고 자주 꽃을 피운다. 반면에 사랑받지 못한 것들은 본래의 모습조차 유지하기 힘들다.

   생명이 없는 사물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정성을 다해 반들반들 밖아 놓은 가구는 윤기가 나고 오래간다. 반면에 주인의 관심에서 멀어진 가구는 먼지가 앉고 칠이 벗겨진다.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어릴 적 개를 키운 적이 있다.

   개에게 몹시 애정을 쏟았던 나는 방과 후면 늘 녀석과 함께 산책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녀석 또한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러나 학년이 점차 올라가면서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녀석에게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사랑을 잃어버린 개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지만 돌아온 주인은 다른 곳에 정신 팔려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만난 최초의 죽음이었다.

   뒤늦게 커다란 상실감에 빠진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면 모든 걸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 시절, 죽은 개의 무덤을 함께 만들던 친구들은 지금 다 시인이 되었다. 한동안 그들과 개의 무덤을 찾아가 노래를 불러주던 나도 시인이 되었지만 진정한 시인은 마음 깊이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짐승이라 해서 감정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한 송이 꽃이나 풀 한 모기도 감정을 지니고 있다. 컵 속의 물 한 잔도 감정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던 게 잘못이다.

   고맙다, 사랑하다 같은 긍정적인 칭찬을 받은 물과, 미칠 것 같다, 죽어버려라, 부숴버리겠다 같은 부정적인 말만 들은 물은 사진으로 찍어놓고 비교해보면 결정체가 달라진다는 사실은 이미 실험을 통해 증명된 일이다.

   개가 죽고 난 이후 나는 다시는 살아있는 생명을 키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상실이 두려워 더 이상 사랑을 주는 일을 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뭔가를 소유하게 되고, 소유한 만큼 또 많은 상실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어리석었던 나는 사랑은 소유이며, 모든 사랑하는 것들은 소유에 의해서 확인되는 것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소유는 필연적으로 상실을 불러왔으니 그것이 우주의 원이라는 사실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소유하는 한 우리는 잃게 될 것이고, 그것은 우리에게 거듭되는 아픔을 안겨줄 것이다. 땅을 사겠다며 강압하는 백인들을 향해 시애틀 추장은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저 하늘과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팔 수 있단 말인가?”

   땅도 팔고, 물도 팔고, 공기까지 팔고 사는 시대지만, 그렇게 사는 것만큼 우리는 더 불행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고통 받는 이유는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푸른 하늘과 흘러가는 강물을 소유할 수 없듯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의 아픔과 그 사람의 좌절과, 그 사람의 희망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겠는가? 내 마음조차 마음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타인이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겠는가?

   소유한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는 한, 우리는 더 아파야 한다. 소유해야 내 것이 되는 것이라고 믿는 한, 우리는 더 잃어버려야 한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산을 깎고, 강을 메우고, 야생의 꽃과 풀을 사라지게 하는 한 인간은 끝없는 결핍과 상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산이 사라지고, 강이 사라지고, 그 산과 강에서 살아가던 짐승이 사라지는 한 우리는 행복할 수 없다. 이미 오래전 인디언 추장은 경고했다. ‘모든 짐승들이 다 사라져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글출처 : 나의 치유는 너다(김재진, 쌤앤파커스)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