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두막에는 유일한 말벗으로 나무로 깎아 놓은 오리가 한 마리 있다. 전에 살던 분이 남겨 놓은 것인데 목을 앞으로 길게 뽑고 있는 것이 그 오리의 특징이다. 누구를 기다리다 그처럼 목이 길어졌을까. 방 안 탁자 위에서 창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 그야말로 학수고대(鶴首苦待)의 모습이다.

   종일 가야 말 한마디 할 일이 없는 나는 가끔 이 오리를 보고 두런두런 말을 건다. 끼니를 챙기러 나갈 때나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려고 방을 나설 때 "나 공양하고 올게," "군불 지피고 오마," 하고 알린다. 외출할 때는 "아무데 다녀올 테니 집 잘 보거라," 하고, 돌아와서는 "나 다녀왔네. 잘 있었는가?"하고 안부를 묻는다.

   오리는 그저 듣기만 하고 대꾸가 없다. 그러나 내게는 허공을 대하고 말하는 것보다는 구체적인 말의 울림이 있다. 어쩌면 내 귀가 어두워서 그의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무로 깎아 만들어 놓은 오리이지만 생물의 몸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두막에서 내 말벗이 되어 주고 있다. 오리가 좀 무료해 할까 봐 최근 그 앞에 기름등잔을 놓아두었더니 오리에게 생기가 돌고 전에 없던 어떤 표정이 생긴 것 같다.

   눈에 갇혔다가 20일 만에 바깥나들이를 했다. 장마철이면 연일 비가 내리듯이 눈 고장에서는 거의 날마다 눈이 내린다. 그러나 눈은 장맛비처럼 지루하거나 답답하지는 않다. 눈 속에서 사는 요령만 터득해 놓으면 깊숙한 겨울의 정취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먹을거리는 미리 준비해 두었으니 물과 땔감을 그때그때 마련하면 된다. 물을 길어 오려면 20센티미터도 넘게 두텁게 얼어붙은 개울의 얼음장을 깬다. 그보다 먼저 밤새 내려 쌓인 눈을 가래로 쳐서 개울로 가는 길을 내야 한다. 눈을 밟아 다져지기 전에 가래로 밀면 폭 50센티미터쯤의 길이 열린다. 물통 두 개면 혼자서 하루 쓰기에 알맞다.

   추울 때는 영화 20도를 오르내리고 좀 누그러지면 영하 7,8도의 기온이므로 도끼로 얼음장을 뚫어야 흐르는 물과 그 소리가 드러난다. 그런데 얼음장 속으로 흐르는 개울물은 이내 다시 얼어붙는다. 궁리 끝에 두어 자쯤 아래쪽에 한군데 더 얼음장을 깨고 숨구멍을 터놓았더니 어지간한 추위로는 얼지 않았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이번 겨울에 새로 얻어낸 지혜다.

   땔감은 지난해 가을 읍내 제재소에서 피죽을 사서 두 차분을 실어 올렸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나서 운동 삼아 나뭇간에서 피죽을 톱으로 켜고 도끼로 쪼개고 나면 땀이 촉촉이 배어 하루의 운동량으로는 충분하다. 이번에 읍내 철물점에서 새로 사온 톱이 잘 들어 일하기가 아주 유쾌하다. 이렇게 잘 드는 연장에 어째서 국적을 밝히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다. 톱은 케이스까지 딸린 것으로 상표로 'White Horse'라고만 했지 어느 나라 제품이 라고는 밝히지 않았다. 시골 철물점에서 파는 6천 원짜리이니 값비싼 수입품은 아닐 텐데. 바야흐로 국제화시대임을 이런 데서까지 실감하게 된다.

   나는 가끔 내 손을 들여다보면서 고마워할 때가 있다. 나무와 찬물을 다루다 보니 손결이 거칠어졌지만 이 손이 아니면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물을 길어 오고, 땔감을 마련하고, 먹을거리를 챙겨 주는 것도 이 손이다. 그리고 내 삶의 자취와 생각을 이렇게 문자를 빌려 표현해 주는 것 또한 이 손이다. 이 손이 내 몸을 이루고 있는 한 지체인 줄은 알지만 그 수고에 대해서 새삼스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크리슈나무르티의 마지막 메시지를 담은 사진첩에서 그의 손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컬러로 된 사진첩에는 맨 끝장에 그의 두 손바닥을 찍은 사진이 들어 있는데, 손가락의 형태며 손금의 모양이 내 손과 너무도 흡사해서 놀랐던 것이다. 친지들도 그 사진과 내 손바닥을 겨주어 보면서 그 비슷함에 감탄해 마지않았었다.

   내 얼굴을 마주 대하면서 법정 스님을 많이 닮았다는 말을 낯선 사람들로부터 들을 때가 더러 있다. '정말 그럴까'하고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이름이란 무엇인가. 이름이 있기 전에 실체가 존재한 것인데, 어째서 우리들은 그 이름에만 매달리려고 하는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무엇이 나인가. 묻고 또 물어도 나의 실체는 선뜻 찾아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없는 것인가, 그 실체가 없다면 이름도 붙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름과 껍데기만을 보고 실체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이름은 언젠가 실체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마련이다. 이름은 한때의 명칭일 뿐 실체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인을 두고 아무개를 많이 닮았다는 말은 보다 진시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요. 그 스님이 나를 많이 닮았다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

   노자老子는 말한다.

   "있고 없음은 서로를 낳아주고, 쉽고 어려움은 서로를 이루어 주며, 길고 짧음은 상대를 드러내주고, 높고 낮음은 서로를 다하게 하며, 음과 소리는 서로 화답하고, 앞과 뒤는 서로를 뒤따른다."

   건성으로 읽지 말고 다시 음미해 보라. 이게 바로 모든 존재를 뒤받쳐주고 있는 우주의 조화다. 이런 도리를 철저히 자기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우리는 있고 없음에 연연하지 않고, 쉽고 어려운 일에 집착하지 않으며, 길거나 짧거나 높거나 낮거나 혹은 앞서건 뒤서건 아득바득 할 것이 없다. 모든 일은 상호 보안하면서 우주의 질서인 그 조화調和에 의해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이 순리대로 이루어진다.

   한 생애를 유장한 흐름으로 본다면 매사에 너무 조급하거나 성급하게 서둘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생활이나 한 나라의 경영에서도 이 조급함과 성급함은 금물이다. 그 많은 시행착오는 바로 이 조급함과 성급함이 낳은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우주의 숨결 같은 그 조화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순간순간 삶의 묘미를 터득하게 될 것이다.

   며칠 전에 나는 귀한 경험을 했다. 밖에는 함박눈이 끝없이 내리고 앞산에서는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그런 날이었다. 문득 전에 받은 편지의 답장을 쓰고 싶었다. 이런 날은 붓글씨로 써야 제격일 것 같아 벼루에 먹을 갈다가 쓸 만한 종이를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종이가 눈에 띄지 않았다. 광 한쪽의 도배하고 남은 종이 속에 화선지가 두 장 끼여 있는 걸 보고 나는 얼마나 반갑고 고마워했는지 모른다. 3등분으로 오려서 두루마리로 말았다. 종이를 아끼느라고 작은 글씨로 또박또박 써 나가니 내 마음이 아주 고풍스러워졌다. 옛 어른들의 서찰을 보면 귀한 종이를 다루던 청빈한 그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날 우리들은, 아니 나 자신은 종이를 너무 헤프게 다룬다. 서탁 곁에 있는 휴지통에는 말짱한 종이가 휴지로 버려지기 일쑤다. 이 종이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왔는지, 숲속의 나무로부터 시작해서 낱낱이 그 경로를 추적하면 종이 한 장에 얼마나 많은 공이 들어 있는지 능히 헤아릴 수 있다. 단 두 장뿐인 화선지를 조심조심 다루면서 나는 종이에 대한 고마움을 뒤늦게 절감했다. 역시 작은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적은 것은 귀하다. 아름답고 귀한 것이 우리들의 삶을 넉넉하게 채워준다고 그날 거듭 되새기게 되었다.

   이게 어디 종이만이겠는가. 물건이 너무 흔해빠진 세상에 살다 보니 삶의 향기인 그 아름다움과 귀함과 고마움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전에 없이 풍요로운 물질문화 속에 살면서도 내면은 메마르고 공허하고 오색하고 빈곤해졌다.

   우리는 우리가 지켜온 것들과 분수에 맞는 생활과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로 치닫는 미국형 산업사회를 성장 모델로 삼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처럼 심각해진 환경오염과 교통지옥과 범죄와 사회 혼란 등, 그리고 왜소하고 황폐한 우리 자신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가 내일을 기약하려면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산업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개개인이 적게 갖고, 적게 쓰고, 적게 버리는 전통적인 청빈의 덕성을 회복해야만 한다.
 
1994. 3
글출처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법정스님, 샘터)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