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 되니 다시 길이 막힌다. 산과 바다를 찾아가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더위를 피해서, 또는 자신에게 주어진 여가를 보내기 위해 모처럼 일상의 집에서 떠나온 길이다.

   더위를 피할 곳이 어디이기에 이처럼 동이 트기 전부터 차량의 흐름을 이루는가. 바다와 산으로 가야만 더위를 피하고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떼 지어 몰려드는 곳은 어디를 가릴 것 없이 소란스럽고 지저분하다. 이제는 사람들 자신이 이 지구의 오염원으로 전락되고 있다.

   농경사회에서는 따로 휴가철이 없었다. 농한기에도 농사와 관련된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쇠붙이로 된 기계도 때로는 정비를 우해 멈추어야 하는데, 생물인 사람이 계속해서 일에만 매달릴 수 있겠는가.

   그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 그에게 주어진 여가를 어떻게 쓰고 있느냐에 의해서 또한 그 사람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일머리를 알아야 한다. 일머리를 모르면 공연히 허둥대기만 할 뿐 일을 온전하게 치르지 못한다. 사람은 쉴 줄도 알아야 한다. 쉴 줄을 모르면 모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여분의 시간과 돈과 기운을 부질없이 소모하고 만다. 일을 배우고 익히듯이 쉬는 것도 배우고 익혀야 한다.

   휴가철 산골짜기나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모였다 하면, 으레 먹고 마시고 화투판 아니면 떠들어내든 한결같은 풍경. 우리 한국인의 자질을 거듭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났으면서도 그 범속한 일상성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자연의 품에 안겨 인간이 보다 성숙해질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야생동물들은 쉬어간 자리를 결코 더럽히지 않는다. 이제는 사람이 짐승에게 배워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같은 생물이면서도 사람인 내 자신이 짐승 앞에 서기가 몹시 부끄럽게 여겨질 때가 있다.

   요즘 단원 김홍도의 화집을 펼쳐보는데, 여기저기서 서걱거리는 파초잎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의 그림에 <월하취생도>가 있다. 준수하게 생긴 젊은 사내가 파초잎을 깔고 앉아 생황(笙簧)을 불고 있다. 헐렁한 베잠방이 옷에 망건을 썼는데, 맨살이 드러난 두 다리를 세워 그 무릎 위에 양팔을 받치고 몸을 앞으로 기울여 생황을 불고 있다. 그 곁에 질그릇 술병과 사발, 흰 족자 두 개, 벼루와 먹과 붓 두 자루.

   화가 자신의 방인지도 모르겠다. 단원의 활달한 글씨로 ‘월당처절승용음(月堂凄切勝龍吟)’이란 화제(畵題)가 우측 상단에 씌어 있다. 달빛이 비쳐드는 방 안에서 생황소리는 용의 울음보다 더 처절하다는 내용이다.

   내가 불일암에 살 때 이 그림을 처음 보고 좋아서 흉내 낸 일이 있다. 여름날 산그늘이 내릴 무렵 후박나무 아래 파초잎을 하나 베어다가 행건을 풀어 제치고 맨발로 그 위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갑자기 신선이라도 괸 기분이었다. 살갗에 닿는 파초잎의 감촉이 별스러워 삽시간에 더위가 가셨다. 우리 선인들의 더위를 식히는 풍류가 얼마나 멋스러운지 몸소 겪게 된 기회였다.

   이 <월하취행도>에서 우리는 단원의 인품을 얼마쯤 엿볼 수 있다.단원의 스승으로서 어릴 때부터 그를 잘 알았던 표암 강세황은 그의 문집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능(김홍도의 자)이 인품은 얼굴이 빼어나게 준수하고 마음이 툭 트여 깨끗하니, 보는 사람마다 고아하고 탈속하여 시정의 용렬하고 좀스런 무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성품이 거문고와 피리의 청아한 소리를 좋아하여 꽃피고 달 밝은 밤이면 때때로 한두 곡조를 연주하여 스스로 즐겼다.

   그는 풍규가 호탕하여 슬프게 노래하고 싶은 생각이 나면 분하거나 물을 뿌리면서 울기도 하였다. 그의 마음은 아는 사람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김홍도의 외아들 김양기와 절친한 사이였던 조희룡(<매화서옥도>로 유명)은 <김홍도전>에서 그 유명한 매화에 얽힌 이야기를 이와 같이 전한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끼니를 잇지 못하는 때가 더러 있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 한 분을 파는데 그 모양이 매우 기이한 것이어서 가지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매화와 바꿀 돈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 돈 3천 냥을 예물로 보내준 이가 있었다. 이것을 그림을 그려 달라는 사례였다. 즉시 2천 냥을 주고 매화와 바꾸고, 8백 냥으로는 술 몇 말을 사서 친구들을 모아 매화를 완상하는 술자리를 열었다. 그리고 남은 2백 냥으로 쌀과 땔감의 밑천을 삼았다. 그의 사람됨이 이와 같았다."

   이 일화를 통해서 단원의 호방한 인품을 알 수 있다. 도량이 크고 일상사에 거리낌이 없는 이런 성품이기에 우리 희화사에 두고두고 빛을 발할 좋은 그림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옛사람의 탈속한 그림과 이럴ㄴ 이야기를 대하면 삼복더위 속에서도 시원함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화선(畵仙)인 단원을 이 자리에 모신 까닭도 여기에 있다.

글출처 : 오두막 편지(法頂 스님, 이레) 中에서......
 

  
2012.05.15 (05:42:03)
[레벨:28]id: 데보라
 
 
profile

한국의 휴가철은 상상만해도

스트레스를 받을것 같아요

 

휴가는 쉼이 있어야 하는데

가끔 보면 전쟁이더라구요...ㅠㅜㅜㅜ

 

김홍도의 월하취행도가 보고 싶네요

그런 그림 속에서

시원하게 쉼을 찾으면 참 좋겠지요

 

올 여름 휴가철~......

한국은 똑 같겠지요...매년~

그러고보면 이곳 사람들은

휴가를 참 멋지게 즐기는것 같아요

 

울 오작교님은 올 여름 휴가를 어떻게????...

편안한 쉼이 있는 시원한 휴가철이 되시기를~~~

 
(98.193.67.48)
  
2012.05.15 (08:08:06)
[레벨:29]id: 오작교
 
 
 

데보라님.

맞습니다.

우리나라의 휴가철은 완전히 전쟁터이지요.

모처럼 가족과 함께 좀 쉴려고 하는 것이 휴가인데

휴가라고 다녀오면 더 힘이드는 것이 현실이니......

 

그래서 저는 남들이 피크라고 생각할 때에 휴가를 떠나지 않습니다.

여름휴가는 집에서 보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대신 가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호젓한 곳을 찾아 떠나곤 하지요.

 

올 여름 휴가요?

변함없이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