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없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