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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규
뚝딱, 한 그릇의 밥을 죽이다 / 이덕규
먼 들판에서 일에 몰두하다 보면 문득 허기가 밀려와 팔 다리를 마구 흔들어댈 때가 있다
사람을 삼시세끼 밥상 앞에 무릎 꿇여야 적성이 풀리는 밥의 오래된 폭력이다
때를 거르면 나를 잡아먹겠다는 듯이 사지를 흔들어대는 허기진 밥의 主食은 그러니까, 오래 전부터 사람이다
결국 사람은 모두 밥에게 먹힌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이 빈 밥통의 떨림,
그러나 캄캄한 우물처럼 깊고 고요한 밥통의 중심에 내려가 맑은 공명을 즐기듯
먹먹하게 담배를 피워 물고 논두렁에 가만히 앉아 잇어면 어느 순간
감쪽같이 배고픔이 사라지고 어떤 기운이 나를 다시 천천히 일으켜 세우는 것인데, 그 힘은
내 마음 어딘가에서 밥을 제압하기 위해 흘러나오는
또 다른 밥의 농밀한 엑기스인 치사량의 毒과 같은 것이다
사나흘 굶고도 그 알 수 없는 기운으로 벌떡 일어나 품을 팔았던 어머니들처럼
수시로 닥치는 밥의 위기 때마다
마지막인 듯 두 눈 부릅뜬 채 막다른 곳으로 밥을 밀어붙이면 비로소 밥은 모락모락
두 손 들고 밥상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래 먼 들판에서 하던 일 마저 끝내고 허적허적 돌아와
그 원수 같은 한 그릇의 밥을 죽이듯 뚝딱, 해치우고 나면
내 마음의 근골 깊숙이 묻힌 절미항아리에
낮에 축낸 한 숟가락의 독이 다시 끄르륵, 들어차는 소리 듣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