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없는 詩 - 태그없이 시만 올리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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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난초 도둑』이란 소설도 있지만 정말 허브를 도둑맞는 일이 있었습니다. 새들새들한 게 안쓰러워 거름 주고 햇볕도 주려 복도 끝 창가에 내놓았지요. 그런데 잠시 자리 비운 사이에 화분이 감쪽같이 사라진 겁니다. 기막히고 허탈했지만 이내 맘을 바꿔먹고 짧은 쪽지를 써붙였지요.
이 자리에 놓여 있던 화분을 가져가신 분께
아마 저보다 더 그 꽃을 사랑하실 분인 것 같습
니다. 오늘 마침 거름을 넣어주었으니 6개월 안
에는 거름을 주지 않아도 됩니다.
부디 그 꽃을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런데, 오늘 화분이 돌아왔습니다. 볼일 마치고 오니 그 자리에 화분이 머쓱하게 앉아 있습디다. 그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 낯선 얼굴이었습니다. 써붙인 쪽지 떼어내고 이런 쪽지를 붙여놓았더군요.
이 화분에 대해서 걱정하고 계신 분께
이 화분이 잠시 새로운 지평선이 보고 싶어서 짧
은 여행을 다녀왔어요. 이제 돌아왔으니 행복하
다고 하네요. ^^
배수로에 엎드려 하의 벗긴 채 발견되지 않고 말짱하게 돌아온 허브의 알리바이가 기적 같았습니다. 올 봄 허브꽃은 아무래도 끼끗한 속옷 빨래처럼 희디희게 피어나겠습니다. 축축한 골짜기마다 굴러다니던 막돌에서 하얗게 난초꽃도 빠져나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