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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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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무럭무럭 구덩이
/이우성
이곳은 내가 파 놓은 구덩이입니다
너 또 방 안에 무슨 짓이니
저녁밥을 먹다 말고 엄마가 꾸짖으러 옵니다
구덩이에 발이 걸려 넘어집니다
숟가락이 구덩이 옆에 꽂힙니다.
잘 뒤집으면 모자가 되겠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온 형이
내가 한 눈 파는 사이 구덩이를 들고 나갑니다
달리며 떨어지는 잎사귀를 구덩이에 담습니다
숟가락을 뽑아 들고 퍼 먹습니다
잘 마른 잎들이라 숟가락이 필요 없습니다
형은 벌써 싫증을 내고 구덩이를 던집니다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러 옵니다
반짝반짝 구덩이
외출하기 위해 나는 부엌으로 갑니다
중력과 월요일의 외투가 걱정입니다
그릇 사이에서 구덩이를 꺼내 머리에 씁니다
나는 쏙 들어갑니다
강아지 눈에는 내가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에게 전화가 옵니다
학교에서 나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나는 구덩이를 다시 땅에 묻습니다
저 구덩이가 빨리 자라야 새들이 집을 지을 텐데
엄마는 숟가락이 없어져서 큰일이라고 한숨을 쉽니다
(2009 한국일보 신춘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