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익
 


길은 죽음을 욕망한다

詩/이수익



길은 처음 산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스며 있었을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한 그 길을
따라 짐승들이 지나고 드문드문
유령 같은 인적이 밟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길은 살며시
들판으로 내려와 마을 오솔길이 되고
꼬불꼬불 논둑길이 되고 장터로 향해 가는
달구지길이 되었을 것이다 조금씩 그리로
사람들 그림자도 붐비기 시작했을 것이다

지금은 산에서 산으로, 들에서 들로,
터널에서 터널로 이어진 사통팔달 길에는
속력의 쾌감을 마시며 차들이 질주한다
모든 길은 정면과 측면으로 가없이 뻗어 있고
가속 페달은 제한속도를 거부하고 있다
길은 이제 죽음에 도전하는 폭력의 코스가 되어 있다

길에 길들면서 사람들 또한
욕망한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에 몸을 내던지고 싶다고
마침내 저의 길을 끝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