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일송
동백 곁에서

권일송

빨깐 동백이 둘레에 피어난다.
동백의 살갗은 그 여자를 닮았다.
하르르 떨리면 공중에 맴을 긋는
한 겨울의 축제.
어디선가 낯선 섬들이
돌고래의 거친 숨을 쉰다.
송송 뚫린 땀구멍으로
여자의 덧니와
동백의 살갗이 반반씩 새어 나간다.
최근에 만난 그 여자는 동백이다.
허리가 두 토막난
이브의 희디흰 늑골.
섬은 함성과 깃발로 뒤싸였다.
마구 치솟는 정오 무렵의 물포래
마침내 사슬 풀린 바다의 말이
달려 나간다.
만남 속에서 부서지는
무수한 내일들이 푸성귀 마냥
우줄우줄 자라는 계절.
최근에 만난 그 여자는
젖어있는 꽃잎이었다.
비칠거리는 난간에 목을 매달고
한사코 투명한 겨울을 헤엄치는 그 여자
이 시대가 뿌리는
앙상한 뼈의 신호.
그 덫에 걸린 하루가
오늘은 웬 일로 동백 곁에서
호숩게도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