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초토(焦土)의 시(詩) 8

적군 묘지(敵軍墓地)에서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로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30리면

가로막히고


무인 공산(無人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어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 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