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옛 추억의 사진을 올리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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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모독' '부패상 폭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 영화 '자유부인'(1956)에서 대학교수 부인 오선영이 남편의 제자 신춘호와 헤어지며 나누는 대화다. '아주머니'에서 '마담'으로의 급격한 호칭 변화가 인상적이다. 아주머니가 가부장제 아래 놓인 '집안의 노라'(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주인공)를 가리킨다면, 마담은 미국문화가 물결치는 바깥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 '집밖의 노라'가 아니었을지.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은 1954년 1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됐다. 대학교수 장태연과 그의 아내 오선영이 벌이는 엇갈린 로맨스가 작품의 골격이다. 가정주부 오선영은 춤바람이 나더니 불륜 직전에까지 이르고, 근엄한 학자 장태연은 미군부대 타이피스트 박은미와 야릇한 관계에 빠져든다. 독자들은 '오선영의 춤바람이 과연 불륜으로 치닫고 말 것인지' 꽤나 궁금했을 것이고, '내가 장태연 교수라면 바람난 아내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했을 듯.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비석의 회고다. "어떤 여성단체에서는 '여성 모독죄'로 시경에 고소장을 내는 바람에 시경에도 불려 다녀야 했고 치안국에서는 남한의 부패상을 소설로 폭로하여 공산도배들에게 이적행위를 한다는 이유로 나를 치안국에 연행해다가 취조까지 했다."('물의를 일으킨 자유부인') 또한 타락한 정치인과 부패한 공무원에 대한 묘사가 문제가 되자, 작가가 나서 공무원의 위신을 손상하는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석명서(釋明書)를 발표했다.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자유부인'이었던 셈. 황산덕은 사뭇 흥미로운 후일담을 남겼다. "그간 우리 사회는 정비석 씨가 예측했던 것보다 빨리 부패하고 말았으므로, 닭 쫓던 개 모양으로 정 씨와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신동아' 1965년 8월) 소설 '자유부인'이 1956년부터 1990년까지 6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졌던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글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출처 : 조선일보 2008.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