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옛 추억의 사진을 올리는 공간
글 수 381
이것저것 제하면 남는 건 빈 봉투 "가불하는 재미로 출근하다가 월급날은 남몰래 쓸쓸해진다. 이것저것 제하면 남는 건 남는 건 빈 봉투. 한숨으로 봉투 속을 채워나 볼까. 외상술을 마시면서 큰소리치고, 월급날은 혼자서 가슴을 친다. 요리조리 빼앗기면 남는 건 남는 건 빈 봉투. 어떡하면 집사람을 위로해줄까." 월급봉투의 시대가 막을 내리기 시작한 것은 은행들이 온라인 전산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한 1980년대 초라고 한다. 중소 제조업체들 상당수는 이후로도 월급봉투를 유지했지만, 주거래 은행의 압박성(?) 권유를 이기지는 못했다. 군 장병들의 월급도 중앙경리단에서 각급 부대를 거쳐 월급봉투에 담아 지급하던 것에서, 2006년부터 곧바로 장병 개인 온라인 계좌로 입금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서 1957년부터 44년을 봉직하며 받은 월급봉투와 급여명세서를 빠짐없이 모아두었다는 김민수 명예교수. 이 노학자에게 월급봉투는 무엇일까? 그것은 월급봉투에 적힌 액수의 가치로 결코 환원시킬 수 없는 삶의 곡절과 영욕과 흘린 땀과 그 밖의 또 다른 소중한 그 무엇이리라. 최희준의 '월급봉투'가 겪은 운명을 빼먹을 뻔했다. 심의에 걸려 노래가 나온 지 1년 뒤에 금지에 묶이고 말았으니 이유인 즉, '남한 인민들이 이렇게 못산다'는 식으로 북한에 이용당할 소지가 있다는 것. 월급봉투도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였다. 글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출처 : 조선일보 2008.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