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옛 추억의 사진을 올리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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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쑥 자라던 시절… 한 벌로 3년 버텼다 남학생 교복은 턱 찌르고 목 욱죄는 딱딱한 목둘레를 고리로 채워야 했다. 한자 중(中) 또는 고(高)자 금속제 표지가 달린 모자 쓰고 교표 새겨진 띠쇠 달린 허리띠 차고, 멜 수 있는 끈은 없고 손잡이만 달린 학생가방을 들면 등교 준비 끝. 목둘레 고리 풀고 웃옷 단추 몇 개 풀고 소매 말아 올리고 모자 삐딱하게 얹은 반항 패션도 많았지만 등교 때 완장 찬 규율부 학생들 눈길은 매섭기만 하다. '총총히 정독도서관을 향해 비탈진 언덕길을 올라가느라 땀이 슬맺힌 교복 차림 여학생들의 쇄골 안쪽 살갖.' 교복 입은 여학생 훔쳐보던 그 시절 남학생들 가슴 설레게 만드는 작가 김연수의 관찰이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교복을 개조하는 학생들도 제법 있었다. 바지 아래통을 넓혀 나팔바지를 해 입고 교모 챙을 한껏 구부리고, 핀으로 치맛단 줄여 입는 게 고전적이다. 교복 튜닝의 최고수들은 멀쩡한 교복 안과 바깥을 뒤집어 입는 속칭 '우라까이'(뒤집기를 뜻하는 일본어 우라가에시)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복 뒤집기가 반드시 멋 내기 개조만은 아니었다. 오래 입어 색이 너무 바랬지만 새 교복 살 형편이 못될 때, 형제끼리 물려 입을 때도 이루어졌다. 이럴 경우 보통 왼쪽에 있는 웃옷 윗주머니가 오른쪽에 있게 되니 창피했다는 이들도 있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이 유명한 구절은 고등학교 졸업식 때 교복 찢고 연탄재 뒤집어쓰는 파괴로 과격하게 실현되곤 했다. 글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출처 : 조선일보 2008.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