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옛 추억의 사진을 올리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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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엔 비 내리고 발 밑으로는 쥐가… "동도극장이 단골이란 건 엄마에게도 반 친구들에게도 비밀이었지만, 따로 친구들하고도 곧잘 극장출입을 했다. 어둠 속에서 교복의 흰 깃은 단박 눈에 띄게 돼 있어서 날쌔게 안으로 구겨 넣고 시치미 떼고 앉았다고 누가 학생인 걸 모를까마는 세상을 감쪽같이 속여먹은 것 같은 쾌감을 맛보곤 했다."(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배우 이순재가 대학시절 하루 종일 죽치던 곳도 동도극장이다. 기억 저편의 이름들 대왕, 성남, 계림, 미아리, 삼양, 아폴로, 세일, 영보, 천지, 동일, 연흥, 우신, 동양, 평화, 오스카, 새서울, 중화, 금성. 재개봉관을 이류극장, 동시상영관을 삼류극장으로 분류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모두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쇠락했다. 바야흐로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의 시대가 오고 있었던 것. 이류 개봉관으로 분류되던 미아리 대지극장, 영등포 명화극장, 서대문 화양극장 '영웅본색'의 전설도 그야말로 전설이 됐다. 시인 배용제는 '거추장스러운 날들이 주머니 속에서 뒹굴던 한때, / 그때 나 삼류극장의 어둑한 통로를 걸어 / 환각의 세계로 잠입했었네'(삼류극장에서의 한때1)라 말하고 시인 유하는 '파고다 극장을 지나며―80년대의 끄트머리에서'를 통해 이렇게 회상한다. '끈질기게 그 자리를 지키는구나, 파고다 극장 / 한땐 영화의 시절을 누린 적도 있었지 / 내 사춘기 동시상영의 나날들 / 송성문씨 수업 도중 햇살을 등에 업고 빠져나온, / 썬샤인 온 마이 쇼울더, 그날의 영화들은 / 아무리 따라지라도 왜 그리 슬프기만 하던지 / 동시상영의 세상 읽기가 / 나를 얼마나 조로하게 했던지.' 글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출처 : 조선일보 2008.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