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옛 추억의 사진을 올리는 공간
디스코텍 대체 장소… 즉석 미팅도 박자가 빠르고 흥겹고 멜로디가 쉽고 중독성이 강하며 맛으로 치면 한여름 달큼하고 시원한 탄산음료 같은, 이른바 유로댄스 음악이 쿵쾅거린다. 디제이가 신청곡 받는 곳도 있다. 혼자 가는 법은 거의 없고 친구들과 몰려가야 재밌다.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금방 어울려 논다. 초등생을 포함한 10대가 99% 이상이다. 자녀가 여기 가는 걸 극구 말리거나 금하는 부모는 드물었으나 그렇다고 내켜하는 건 아니다. 인라인스케이트만 타본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발밑 앞부분에 스토퍼(브레이크)가 달려 있고 네 바퀴인 롤러스케이트가 촌스러워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80년대 많은 청소년은 폼 나는 '자가용'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롤러장은 롤러장 그 이상이었다. 댄스 음악에 몸을 맡길 수 있으니 디스코텍의 대체 장소다. 단순히 '타는 게' 아니라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모두 섞여 다방구 같은 놀이도 했다. 내내 이성 친구 손잡고 타거나, 처음 만난 이성에게 타는 법 가르쳐준다며 슬쩍슬쩍 스킨십도 감행했다. 즉석 미팅이 가능할 때도 있었다. … 어떻게 저렇게 겨울인 체 잘도 하는 복사 빙판 위에 너희 인간들도 결국 알고 보면 인간모형인지 누가 아느냐.' 이상(1910-1937) 수필 '산책의 가을'에 이렇게 롤러스케이트장이 등장한다는 게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당시 서울 파고다 공원 근처에 실외 링크장이 들어서 있었다고 하니 역사가 제법 유구하다. 그때나 80년대나 '요란한 풍경'은 마찬가지. 김훈 에세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며'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아래와 같이 롤러스케이트로 바꿔놓고 싶은 분들이여, 세월은 또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젊은이들의 뒷모습을 볼 때 이 대도시 속에서 원시림을 느낀다. 두발로 땅을 딛고 걸어 다니던 종족에 견주어 볼 때, 발바닥에 바퀴를 달고 미끄러져 가는 종족들의 세계는 얼마나 가볍고 경쾌한 것인가. 그래서 롤러스케이트는 인간 직립 수억만 년 역사 속의 혁명이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개벽이다.' 글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출처 : 조선일보 2008.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