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0 게시판 - 지나온 시절에 대한 글, 추억담을 남기는 공간
글 수 116
▶ 음악재생 ■ 음악정지
"바보들의 행진"(1975년)과 "고래사냥"(1984년)는 9년의 선후배간이다.
70년대와 80년대, 박정희시대와 전두환시대, 그당시의 청춘들이 지금은 4,50대와 5,60대,
또 무엇이 있었을까?
1975년은
유신헌법이 시작되고 대학가의 시위로 긴급조치 7호가 선포된 가운데 월남이 패망한 해이다.
여러가지 사건도 많았지만 당시의 젊은 세대들이 느꼈던 낭패감을 대변했던 영화가
미국에서 조지루카스,후랜시스 포드 코플라등과 같이 수학하고 돌아온
하길종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원작;최인호-일간스포츠연재소설)"이었다.
장발 단속을 하는 경관이 더 장발인 모순된 사회,
`근무 중 이상 있습니다`하며 바쁜 상황에 상관에게 경례를 해야하는 경직된 체제,
70년대 초반의 우리 사회상이었다.
경찰로 출연했던 배우는 지금은 작고한 코메디언 이기동씨였다고 한다.
병태와 영철이 도망할 때 흐르는 곡은 지금도 유명한 송창식의 `왜 불러`이며,
항의하는 듯한 반말투의 가사와 절규하는 듯한 곡조가 영화와 아주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
이 노래는 영화 개봉 얼마후 외색이라는 이유로 금지 가요가 되었다고 한다.
연이은 긴급 조처로 수업보다는 휴강이 많았던 이 때,
`동해엔 고래 한 마리가 있어요, 예쁜 고래 한 마리, 그걸 잡으러 떠날 것예요`
라는 말과 함께 70년대에 만연했던 패배주의와 무력감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리의 바보들은 고래사냥을 목놓아 불렀고,
병태와 영자의 키스를 거둘어 주던 헌병이 더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
역시 암담한 시절일 수록 사랑은 더욱 아름다와 보였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이 실제 대학생을 캐스팅해 이끌어낸 생생한 연기와
송창식의 멋들어진 음악에 70년대 젊은이들의 상실감과 비애를 리얼하게 묘사한
수작이었던데 반해 술집에서 병태가 일본인과 싸우는 장면,
경찰서에 들어간 두 주인공이 여자의 옷을 벗기는 장면,
데모 장면 등이 잘려 30분 분량이 날아가 버린 불운한 영화이기도 하다.
1984년은 학원자율화 검토가 시작되고,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한했으며
지하철 2호선과 88올림픽고속도로개통,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준공등
88올림픽의 분위기가 떠오르던 그런해였다.
"고래사냥"에 대한 한국영상자료원의 내용을 소개하면
제작년도 : 1984
제작사 : 삼영필름
감독 : 배창호
원작 : 최인호
촬영 : 정광석
출연배우 : 안성기, 이미숙, 김수철
배창호 감독의 1984년작 <고래사냥>은 관객동원 42만명으로
그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영화제목 '고래사냥'이 75년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곡>의 주제가였던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과 같은 제목에 같은 의미를 내포한 것이고
70년대 청년문화의 기수였던 최인호의 원작을 각색한 영화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80년대 청춘영화 <고래사냥>은 70년대 청년문화가 보여준 감수성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바보들의 행진>에서 동해에 살고 있는 고래를 잡으러 떠난 영철의 캐릭터를
더욱 확장하여 영화 전체의 골격으로 삼은 <고래사냥>은 영철의 후계자라 할 만한
왜소한 대학생 병태와 벙어리 창녀 춘자, 거지왕초 민우의 모험담을 보여준다.
병태와 민우는 고래를 잡으러 갔다가 동해에 빠져버리는 영철과는 달리
춘자를 사창가에서 빼내 고향으로 돌려보내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녀에게 언어를 되찾아준다.
정치적 억압의 시대이며 이데올로기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80년대에
이 두 남성이 이룬 사소한 성취에 열광했던 80년대의 청춘들은
왜소한 체격과 주눅들린 태도로 여자에게 딱지나 맞는 못난 대학생 병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민족의 알레고리로서 가련한 창녀를 설정하고
그녀를 구원함으로써 자기자신을 구원하는 패턴은 한국영화에서 매우 유서깊은 것인데
특히 청춘들이 무기력과 열패감에 시달렸던 70년대에
이것은 가장 대중적인 내러티브 패턴으로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별들의 고향>에서 화가 문오가 경아를 구원하지 못함으로써
이 영화가 더욱 비극적인 정조, 자기학대에 빠져든다면 ,
<고래사냥>은 70년대의 선조들보다는 훨씬 밝은 세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배창호 감독의 다소 낙관적인 휴머니즘에 기인한 것처럼 보인다.
소심한 병태는 짝사랑하던 여대생 미란에 대한 구애에 실패하고 좌절을 느껴
고래사냥을 위해 가출한다.
그는 거리를 배회하다가 거렁뱅이 민우를 만나 어울린다.
도시를 유전하던 그들은 윤락가에서 벙어리 여인 춘자를 만난다.
병태는 민우의 도움을 얻어 춘자의 잃어버린 말과 고향을 찾아주기로 하고
그녀를 구출시켜 귀향길에 오른다.
어렵고 괴로운 여행으로 춘자는 말을 되찾고 그리운 어머니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 병태는 고래는 먼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찌되었건 중년이후의 우리들은 바보들의 행진에서 고래사냥으로
낭만에서 아픔까지 추억을 간직하며 사는 세대인 것 같다.
[출처 : 네이버
대전대 김병완교수의 70년대이야기( https://dragon.dju.ac.kr/~bwkim )
https://reportworld.co.kr (id:angel0103)
한국영상자료원(https://www.koreafilm.or.kr ]
▶ 음악재생 ■ 음악정지
"바보들의 행진"(1975년)과 "고래사냥"(1984년)는 9년의 선후배간이다.
70년대와 80년대, 박정희시대와 전두환시대, 그당시의 청춘들이 지금은 4,50대와 5,60대,
또 무엇이 있었을까?
1975년은
유신헌법이 시작되고 대학가의 시위로 긴급조치 7호가 선포된 가운데 월남이 패망한 해이다.
여러가지 사건도 많았지만 당시의 젊은 세대들이 느꼈던 낭패감을 대변했던 영화가
미국에서 조지루카스,후랜시스 포드 코플라등과 같이 수학하고 돌아온
하길종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원작;최인호-일간스포츠연재소설)"이었다.
장발 단속을 하는 경관이 더 장발인 모순된 사회,
`근무 중 이상 있습니다`하며 바쁜 상황에 상관에게 경례를 해야하는 경직된 체제,
70년대 초반의 우리 사회상이었다.
경찰로 출연했던 배우는 지금은 작고한 코메디언 이기동씨였다고 한다.
병태와 영철이 도망할 때 흐르는 곡은 지금도 유명한 송창식의 `왜 불러`이며,
항의하는 듯한 반말투의 가사와 절규하는 듯한 곡조가 영화와 아주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
이 노래는 영화 개봉 얼마후 외색이라는 이유로 금지 가요가 되었다고 한다.
연이은 긴급 조처로 수업보다는 휴강이 많았던 이 때,
`동해엔 고래 한 마리가 있어요, 예쁜 고래 한 마리, 그걸 잡으러 떠날 것예요`
라는 말과 함께 70년대에 만연했던 패배주의와 무력감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리의 바보들은 고래사냥을 목놓아 불렀고,
병태와 영자의 키스를 거둘어 주던 헌병이 더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
역시 암담한 시절일 수록 사랑은 더욱 아름다와 보였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이 실제 대학생을 캐스팅해 이끌어낸 생생한 연기와
송창식의 멋들어진 음악에 70년대 젊은이들의 상실감과 비애를 리얼하게 묘사한
수작이었던데 반해 술집에서 병태가 일본인과 싸우는 장면,
경찰서에 들어간 두 주인공이 여자의 옷을 벗기는 장면,
데모 장면 등이 잘려 30분 분량이 날아가 버린 불운한 영화이기도 하다.
1984년은 학원자율화 검토가 시작되고,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한했으며
지하철 2호선과 88올림픽고속도로개통,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준공등
88올림픽의 분위기가 떠오르던 그런해였다.
"고래사냥"에 대한 한국영상자료원의 내용을 소개하면
제작년도 : 1984
제작사 : 삼영필름
감독 : 배창호
원작 : 최인호
촬영 : 정광석
출연배우 : 안성기, 이미숙, 김수철
배창호 감독의 1984년작 <고래사냥>은 관객동원 42만명으로
그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영화제목 '고래사냥'이 75년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곡>의 주제가였던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과 같은 제목에 같은 의미를 내포한 것이고
70년대 청년문화의 기수였던 최인호의 원작을 각색한 영화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80년대 청춘영화 <고래사냥>은 70년대 청년문화가 보여준 감수성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바보들의 행진>에서 동해에 살고 있는 고래를 잡으러 떠난 영철의 캐릭터를
더욱 확장하여 영화 전체의 골격으로 삼은 <고래사냥>은 영철의 후계자라 할 만한
왜소한 대학생 병태와 벙어리 창녀 춘자, 거지왕초 민우의 모험담을 보여준다.
병태와 민우는 고래를 잡으러 갔다가 동해에 빠져버리는 영철과는 달리
춘자를 사창가에서 빼내 고향으로 돌려보내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녀에게 언어를 되찾아준다.
정치적 억압의 시대이며 이데올로기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80년대에
이 두 남성이 이룬 사소한 성취에 열광했던 80년대의 청춘들은
왜소한 체격과 주눅들린 태도로 여자에게 딱지나 맞는 못난 대학생 병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민족의 알레고리로서 가련한 창녀를 설정하고
그녀를 구원함으로써 자기자신을 구원하는 패턴은 한국영화에서 매우 유서깊은 것인데
특히 청춘들이 무기력과 열패감에 시달렸던 70년대에
이것은 가장 대중적인 내러티브 패턴으로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별들의 고향>에서 화가 문오가 경아를 구원하지 못함으로써
이 영화가 더욱 비극적인 정조, 자기학대에 빠져든다면 ,
<고래사냥>은 70년대의 선조들보다는 훨씬 밝은 세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배창호 감독의 다소 낙관적인 휴머니즘에 기인한 것처럼 보인다.
소심한 병태는 짝사랑하던 여대생 미란에 대한 구애에 실패하고 좌절을 느껴
고래사냥을 위해 가출한다.
그는 거리를 배회하다가 거렁뱅이 민우를 만나 어울린다.
도시를 유전하던 그들은 윤락가에서 벙어리 여인 춘자를 만난다.
병태는 민우의 도움을 얻어 춘자의 잃어버린 말과 고향을 찾아주기로 하고
그녀를 구출시켜 귀향길에 오른다.
어렵고 괴로운 여행으로 춘자는 말을 되찾고 그리운 어머니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 병태는 고래는 먼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찌되었건 중년이후의 우리들은 바보들의 행진에서 고래사냥으로
낭만에서 아픔까지 추억을 간직하며 사는 세대인 것 같다.
[출처 : 네이버
대전대 김병완교수의 70년대이야기( https://dragon.dju.ac.kr/~bwkim )
https://reportworld.co.kr (id:angel0103)
한국영상자료원(https://www.koreafilm.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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