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 것 없는
열매 남기고 떠납니다
모진 바람 불 때면 아무도 모르게
그만 쓰러지고도 싶었습니다.
한 켠으로 내달렸던 마음,
부질없는 희망
이제 접으려 합니다
화려했던 웃음 조용히 거두고
영원히 푸르겠다던 오기
땅 위에 나즈막히 떨구고
너그러운 바람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난 여름의 그 폭풍 같던 사랑
추억의 여운만으로도
저는 이렇듯 빛나고 있습니다
허나 어리석은 미련
갖지 않게 하소서
찬란한 햇살에 욕심
부리지 않게 하소서
행여 꽃 같은 님이라도
쳐다 볼까 두려운
물기 잃은 얼굴입니다
소풍 나왔던 이 세상
황홀한 빛으로 목 놓아 적시다가
어느 시린 가을 날,
스산한 바람 한 점에 날아가듯
저물게 하소서
돌아서는 뒷모습
애달프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