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숭례문] 고건축물 구조 모른 채 물만 뿌려...


@서울신문



아, 숭례문!  / 시인 이근배



  하늘이었다.

  저 조선왕조 6백년의 장엄한 솟을 대문
  아니 이 나라 5천년 역사의 수문장으로
  우러러도 우러러도 다 우러를 수 없는 하늘이었다.
  하늘보다 더 높은 다락이었다.

  새 역사의 궁궐을 짓자.
  억만년 무궁토록 흔들리지도 무너지지도 않을
  사직의 보루를 짓자.

  태조대왕 이성계, 그 혁명,
  그 개국이 창건한 정치의 경제의 군사의 문화의 금자탑이었다.

  백두대간의 바람과 햇빛, 물과 흙을 먹고 자란
  오랜 비바람 눈보라도 뿌리치고 늠름하게 뻗쳐오른
  조선 소나무들이 뽑혀올려와 나무면 나무, 돌이면 돌, 기와면 기와,
  단청이면 단청 신의 솜씨를 자랑하는 잘난 명장들
  어영차! 어영차! 신명나게 집을 지었구나.

  비로소 해보다 더 밝은 나라의 얼굴이 솟아올랐구나.

  보아라, 백성들아,

  동방의 으뜸인 예의를 받드는 겨레 그 뜻을 담은
  崇禮門 세글자는 왕손 양령이 쓰거라.

  백성들 마음 속에 자리잡아 육백년토록
  나날이 새 빛 새 말씀으로 지켜오더니
  부릅뜬 위엄에 외적들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더니
  전란의 불세례도 비켜가더니 이 무슨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냐.

  숭례문이 타고 있다.
  역사가 불길에 휩싸인다.

  아니 나라가 타고 있다.

  이 겨레 떠받치며 살아온 정신의 기둥이
  대들보가 서까래가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발을 구르며 땅을 치며 눈물을 쏟으며
  우리들은 넋 놓고 보고 있었다.

  아무 할 일 없이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무자년 설 연휴 마지막 일요일 밤 9시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그리고 당신네들, 입으로는 문화를 말하면서 정치를 말하면서
  나라 사랑을 말하면서 그래 국보1호 숭례문,
  서울보다 더 서울인 남대문을 잿더미로 만들면서
  백성들 가슴을 온통 숯덩이로 만들면서
  세계 만방에 어찌 얼굴을 들겠느냐.

  천벌을 내려다오.
  우리는 모두 나라를 역사를 문화를 불지른 방화범이었다.

  아, 숭례문!

  다시 한번 보여다오.

  그 넉넉한 가슴, 그 드높은 사랑, 그 우뚝한 기상을
  그리고 세종 임금의 용비어천가를 목을 놓아 불러다오.

  다시 하늘을 차고 오르는 용틀임을 보여다오.

  
@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