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지게를 졌다/이기철


나는 한 때 지게를 졌고
지금은 대학에서 밥 벌고 있다
그 차이가 몇 백리인가
한 때 지게를 졌다는 일이 부끄러움도 아니고
지금 대학에서 밥 버는 일이 자랑도 아니다
덤불에 뿌리 내린 아카시아가 오월 산야를 향기로 물들이듯
내 눈물 예순 겹 펴 오늘 햇빛 아래 말린다
잡연한 세월이라 맗해선 안된다
그 세월 한 올 한 올이 순금인 것을
내 지나온 날이 열무처럼 파랄 때도 있었으니,
이 불빛 아래서 푸른 글 쓰고 있을 사람이여
이제 지친 내 등이 지게를 질 수 없지만
말 팔아 밥 벌 날도 많지 않으니
손금 위에 쌓은 세월 재이지 않기를
내 몸 뉘일 방이 지상의 성소이기를
늦어서 깨닫는 이 어둠 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