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어린시절 아이스케끼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태풍이 그치고 오늘처럼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날에는 시골마을
앞 놀이터에 서있는 느티나무나 골목길 어귀의 시원한 감나무 그
늘 아래서 시원한 아이스케끼 하나 맛있게 먹어도 더위가 삭 가셨다.

읍내에서 30리가 넘은 우리 마을까지도 짐빠리 자전거에 큰 아이
케끼 통을 2개나 높게 실고 마을 앞에 와서 케끼 사먹으라고 아
주 부드럽고 편한말로 “시원한 어라져 있 - 어”하고 외쳐 댈 때
처음엔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시원한
얼음과자 있어”하는 말인 것도 알게 되었다.

아이스케끼 파는 아저씨가 그늘아래 자전거를 세워놓고 쉬고 있을
때 나는 친구들과 아이스케끼 통에서 얼음이 녹아 흘러 나오는 시
원한 얼음물이 신기해서 그 물을 손바닥에 받아 세수를 하기도 했
고, 손잡이는 오로지 모두다 산죽을 이용해서 팥물로 얼린 아이스
케끼를 사먹기 위해 돈이 귀한 때였으므로 집에 있던 마늘, 장작,
헌 고무신 등을 갖다 주고도 아이스케끼를 사먹고 했었다.

중. 고등학교 다닐 때쯤에 친구들은 2-3명이 학교 끝나고 방과
후에 아이스케끼 공장에 가서 아이스케끼 떼다가 파는 것도 유행
이었다. 혼자서도 멜 수 있는 아이스케끼 통1개에 100여개 정도
를 도매 값으로 떼다가 팔지도 못하고 긴 여름날 오후에 해가 넘어
갈 무렵까지 동업한 친구들끼리 시내 큰 건물아래 그늘에 앉아서
그 아이스케끼 다 먹고 케끼통 반납하러 갈 때 자기들 용돈으로 계
산하고 온 밑지는 장사를 하는 친구들도 많았었다.

고 2 때쯤에는 부라보콘이 처음으로 나와 여학생들한테 큰 인기라는
말은 들었는데 그때는 시방처럼 카페라든가 레스토랑도 없이 슈퍼의
휴게실이 만남의 인기 있는 공간 이었므로 데이트 하러 나갔다가
과자도 아니고 생전 처음 보는 무슨 뿔 모양으로 생긴 것을 슈퍼 주
인 아줌마가 쟁반에 내다주기에 틈림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떻게 까먹는 줄을 몰라 여학생만 계속 바라
보고만 있는데 그 여학생이 왈 “먹어” 하면서 자연스럽게 부라보콘 위
쪽을 뜯어 내리기에 나는 시원찮은 목소리로 “응- -” 하고 대답하면서
재빨리 부라보콘을 먹어댔었다. 알고 보니까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그 부라보콘이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오고 있으니 먹을 때마다
그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고 3때 어느 봄날 친구 4명과 오전수업 마치고 모 여중학생들 전체가
소풍가는데 가서 돈벌기로 하고 모두 사복으로 갈아 입었다.
나는 단골 사진관에서 사진관 아저씨가 사용하는 제일 좋은 수동카메라
와 필름을 준비하고 친구들은 쭈쥬바를 통에다 가지고 가서 2인 1조로
팀을 나눠 나는 사진관에서 나온 사람처럼 사진을 찍고 친구 1명은 영
수증을 써주고 2명은 쭈쮸바를 팔았는데 다행히 손해는 보지 않았었다.

스무살 이었던 여름날 마을 구판장에서 같은 마을 1년 선배인 돌콩이라
는 별명을 가진 선배와 누가 아이스크림 많이 먹는지 한번 먹어보자고
시작한 것이 1개에 50원짜리 부드러운 바나나바 40개씩을 똑같이 먹고
내가“형! 더 먹을꺼여? ” 하고 묻자 돌콩 선배도 “야 그만 먹자”해
서 게임은 거기서 마쳤었다. 정말 의리가 있는 그 선배는 나보다 한개
더 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내 자존심 상할까봐 더 이상 먹지말자고 했을
것이다.

근데 바나나바 40개 먹고 나니까 입이 감각이 거의 없고 마비가 되는 듯
하고 “아 - 아 - 으 - 으 - ” 약 10분이상 입을 움직일 수 없었다.ㅎㅎ
그때도 돈도 넉넉하지 않은 세월이었는데 둘이서 아이스크림 40개씩 먹
었다고 마을에 소문이 나서 한때 얼굴을 감추고 다니기도 했었다.
먹기내기 하는 사람은 미련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젊음이 있었
다는 사실이 즐겁고 그때 그 순간을 생각하니 오늘처럼 따가운 날 아이스
크림 하나 먹지 않아도 시원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