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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아흔, 세상 떠날날이 머지 않았지… "
올해 아흔인 홍영녀 할머니는 매일 일기를 쓴다
학교 문턱을 밟아 본 적이 없는 그는
일흔이 돼서야 손주에게 한글을 배웠다
까막눈에서 벗어난 이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홍 할머니는
삐뚤빼뚤 서툰 글씨에 맞춤법조차 엉망이지만
20여년 동안 써 온 그의 일기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
세상과 이별할 날이 머지않은 그의 일기를 통해
누구에게나 닥칠 노년의 삶과, 인생이란 무엇인지
조용히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다.
"이 내 마음 누가 달래 주나"
"그 누가 이 내 마음을 달래 주나"
"청개구리는 무슨 사연으로
저다지 슬픈 소리로…"
"나는 쓸쓸해, 가슴이 서러워…"
오늘도 흰 머리카락 날리면서
산 마을로 너머 가시는 햇님은
어김없이 너머 가시네.
햇님 나는 나는 쓸쓸해.
가슴이 허전해. 가슴이 서러워.
인생은 바다위에 떠 있는 배가 아닐까
흘러 흘러 저 배는 어디로 가는 배냐.
앞쪽으로 타는 사람은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뒤쪽으로 타는 사람은 그 누구를 기다리네..
아직 어두운데…,햇님이 나오셨나
햇살이 고개를 들면 그는 창가로 다가가
햇님에게 인사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
한 시골마을에서 300여평 남짓한 텃밭에
무, 배추, 호박, 가지, 고추 등
갖가지 농사를 지으며 사는 홍 할머니.
밭일을 하는 동안 그는 외롭지도 아프지도 않다
자식 같은 농작물을 매만지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잘 들리지 않아도 TV를 켜 놓으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6남매를 둔 홍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자식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가 혼자를 고집하는 이유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변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
자식들이 걱정하면 그는
"그렇게 죽는 게 복”이라고 대답하며
혼자이기를 고집한다.
헌 내복을 입고 밭일하는 홍 할머니
홍 할머니는 새 내복 보다
낡디 낡은 헌 내복을 더 좋아한다
아들, 딸, 조카들이 사다 준 새 것을 마다하고
헌 내복을 입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내다 버리려고 했던 내복을 또 빨아 입었다
낡은 내복을 입는다고 딸들은 야단이다
새 내복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딸들이 사다 준 내복 조카들이 사 온 내복들이
상자에 담긴 채로 쌓여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 자꾸 새 것 입어
휘질러 놓으면 뭐하나 해서다
그리고 새 옷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을 보면 헌 옷을 입어도 뿌듯하다
얼마나 좋으랴 싶다
그런 에미 맘을 모르고
딸년들은 낡은 옷을 버리라고 야단이다
물끄러미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홍 할머니
추수가 끝나면 홍 할머니는
씨앗 봉투마다 이름을 적어 놓는다
몇 년째 이 일을 반복하는 그는
혹여 내년에 자신이 심지 못하게 되더라도
자식들이 씨앗을 심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손수 지은 농작물을 자식들 손에 들려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홍 할머니가
1994년 8월 18일에 쓴 일기 전문이다
내 글은 남들이 읽으려면
말을 만들어 가며 읽어야 한다
공부를 못해서 아무 방식도 모르고
허방지방 순서도 없이 글귀가 엉망이다
내 가슴 속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꽉 찼다
그래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연필을 들면 가슴이 답답하다 말은 철철 넘치는데
연필 끝은 나가지지 않는다
글씨 한 자 한 자를 꿰맞춰 쓰려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모른다
그때마다 자식을 눈뜬 장님으로 만들어 놓은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글 모르는 게
내가 국민학교 문턱에라도 가 봤으면
글 쓰는 방식이라도 알았으련만
아주 일자무식이니 말이다
엉터리로라도 쓰는 것은
아이(손주)들 학교 다닐 때 어깨 너머로
몇 자 익힌 덕분이다
자식들이나 동생들한테
전화를 걸고 싶어도 못했다
숫자는 더 깜깜이었으니까
70이 가까워서야 손자 놈 인성이 한테
숫자 쓰는 걸 배웠다
밤늦도록 공책에 써 보았고
내 힘으로 딸네 집에 전화 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숫자를 누르고 신호가 가는 동안
가슴이 두근두근 터질 것만 같았다
내가 건 전화로 통화를 하고 나니
장원급제 한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너무 신기해서 동생네도 걸고 자식들한테도
자주 전화를 했다
나는 텔레비젼을 보며 메모도 가끔 한다
딸들이 가끔 메모한 것을 보며 저희들끼리 죽어라 웃어댄다
멸치는‘메룻찌’로, 고등어는‘고동아’로
오만원은‘오마넌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약속 장소를 불러 주는 걸 적었는데
동대문에 있는 이스턴 호텔을
'이슬똘 오떼로' 라고 적어서
딸이 한 동안 연구를 해야 했다
딸들은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며 웃는다
그러나 딸들이 웃는 것은
이 에미를 흉보는 게 아니란 걸 잘 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써 놓은 글들이 부끄럽다
그래서 이 구석 저 구석
써놓은 글들을 숨겨 놓는다
이만큼이라도 쓰게 된 게 다행이다
이젠 손주들이 보는
글씨 큰 동화책을 읽을 수도 있다
인어 공주도 읽었고, 자크의 콩나무도 읽었다
세상에 태어나 글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나마 쓰게 되니까
잠 안 오는 밤에 끄적끄적 몇 마디나마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말벗이 없어도 공책에다
내 생각을 옮기니 너무 좋다
자식을 낳으면 굶더라도
공부만은 꼭 시킬 일이다
홍 할머니가 닦고 또 닦았던 고무신
딱히 외출할 계획도 없는데
설레이는 마음으로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말린 홍 할머니
하지만 갈 곳이 없어 고무신에
다시 먼지가 쌓이고
그는 신어 보지도 않은 채
더러워진 고무신을 또 닦아 햇볕에 내 놓는다
그는 이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뽀얗게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내놓았다
어디 가게 되지 않으니
신어 보지도 않고 다시 닦게 된다
어디든 떠나고
싶다
가슴에 묻은 자식 생각에
눈물짓는 홍 할머니
어린 자식이 숨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젊은 시절의 아픈 기억과
살날 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노년의 외로움이 절절이 담긴 그의 일기는
그만의 일기가 아니다
배고프고 힘든 시절을 꾸역꾸역 참고 살아온
한 여인의 일기요
우리네 어머니의 일기이며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일기다
2006.05.19 20:21:06
`내 가슴 속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꽉 찼다 ......'
말로, 글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재주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만
표현 수단이 모자랐던 할머니는
아마 한글을 깨치시기 전까진 그것들은
가슴속 깊게 깊게 묻어 두셨나 봅니다.
활화산처럼 뿜어나오는 속깊은 진실일진데
표현이 서툴면 어떻고, 철자법이 틀린들 그게 무슨 문제일까요....
좁은 어깨에 얹힌 외로움이 너무나도 선명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성경님.....
말로, 글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재주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만
표현 수단이 모자랐던 할머니는
아마 한글을 깨치시기 전까진 그것들은
가슴속 깊게 깊게 묻어 두셨나 봅니다.
활화산처럼 뿜어나오는 속깊은 진실일진데
표현이 서툴면 어떻고, 철자법이 틀린들 그게 무슨 문제일까요....
좁은 어깨에 얹힌 외로움이 너무나도 선명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성경님.....
2006.05.19 20:39:15
구성경님!
할머니의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젊은사람
못지않게 아름다운 시를 쓰시는군요.
저도 더욱 노력하며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할머니의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젊은사람
못지않게 아름다운 시를 쓰시는군요.
저도 더욱 노력하며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2006.05.19 22:11:14
아마도, 보편적으로 아름답고 흐뭇한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건 그렇게 동일한 감동을 일으카나 봅니다, 구성경님 !
지난 겨울, 웹에서 읽은 이 할머님의 이야기가 너무도 콧날 시리게 해서
냉큼 퍼다 왔었습니다, 제 블로그에.
그리고, 미처 다른데에서 그걸 못본 님들이, 얼마나 감동 ~~
여기서, 다시 읽어도 여전히 금방 눈망울이 흐릿해 집니다.
"청개고리는 무슨 사연으로 저리 슬푼 소리로 ......"
그냥, 숨이
컥 막힙니다. 지금도 ...
언제 어디서건 그렇게 동일한 감동을 일으카나 봅니다, 구성경님 !
지난 겨울, 웹에서 읽은 이 할머님의 이야기가 너무도 콧날 시리게 해서
냉큼 퍼다 왔었습니다, 제 블로그에.
그리고, 미처 다른데에서 그걸 못본 님들이, 얼마나 감동 ~~
여기서, 다시 읽어도 여전히 금방 눈망울이 흐릿해 집니다.
"청개고리는 무슨 사연으로 저리 슬푼 소리로 ......"
그냥, 숨이
컥 막힙니다. 지금도 ...
2006.05.20 01:00:17
어쩜...............
저도 저 하얀 고무신 한 번 깨끗이 닦아 드리고 싶습니다..
깊은 밤에 자판 두들기면서 마음속으로 눈물이 흐릅니다..
저도 저 하얀 고무신 한 번 깨끗이 닦아 드리고 싶습니다..
깊은 밤에 자판 두들기면서 마음속으로 눈물이 흐릅니다..
2006.05.20 08:54:40
Diva님! 우린 실제로 어떤 글을 적기위해선 꾸미는
경우가 많은데 Diva님 말씀대로 표현이 서툴고
철자법이 틀린것이 무슨 문제이겠습니까!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용어로 글을 적기때문에
아마 저 할머니보다 더 엉망으로 글을 쓰는 세상에.
글은 눈으로 읽기보다 마음으로 읽으면 더 좋을것 같해요.
빈지게님! 오랜만에 들어 와서 죄송합니다.
핑계같지만 많은 일들이 있어서 컴에 앉지를 못했습니다.
앞으론 바빠도, 힘들어도 빠지지않고 출석하도록 노력할게요.ㅎㅎㅎ
古友님! 할머니의 글속에 담긴 외로움을 자식들이 알까요?
틀린 철자가 더 다정스럽게 가슴에 전해져 옵니다.
지난 겨울에 보셨다구요? 전 얼마전에 읽고 마음이 와 닿아
가져와서 올렸는데......
겨울에 보았으면 더 시렸을것 같아요. 마음이.
별님! 도시에선 할머니들도 하얀 고무신을 잘 신지 않는것 같아요.
그래서 고무신을 보면 고향생각이 드나봐요.
마음으로라도 할머니의 외로움을 감싸주어요.
사철나무님! 우리 모두 따뜻한 가슴을 안고,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한번 더 바라보면서 살아 가기로 해요.
주위에 외로운분들이 계시면 따뜻한 말한마디라도
해줄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
경우가 많은데 Diva님 말씀대로 표현이 서툴고
철자법이 틀린것이 무슨 문제이겠습니까!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용어로 글을 적기때문에
아마 저 할머니보다 더 엉망으로 글을 쓰는 세상에.
글은 눈으로 읽기보다 마음으로 읽으면 더 좋을것 같해요.
빈지게님! 오랜만에 들어 와서 죄송합니다.
핑계같지만 많은 일들이 있어서 컴에 앉지를 못했습니다.
앞으론 바빠도, 힘들어도 빠지지않고 출석하도록 노력할게요.ㅎㅎㅎ
古友님! 할머니의 글속에 담긴 외로움을 자식들이 알까요?
틀린 철자가 더 다정스럽게 가슴에 전해져 옵니다.
지난 겨울에 보셨다구요? 전 얼마전에 읽고 마음이 와 닿아
가져와서 올렸는데......
겨울에 보았으면 더 시렸을것 같아요. 마음이.
별님! 도시에선 할머니들도 하얀 고무신을 잘 신지 않는것 같아요.
그래서 고무신을 보면 고향생각이 드나봐요.
마음으로라도 할머니의 외로움을 감싸주어요.
사철나무님! 우리 모두 따뜻한 가슴을 안고,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한번 더 바라보면서 살아 가기로 해요.
주위에 외로운분들이 계시면 따뜻한 말한마디라도
해줄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
2006.05.21 10:55:11
뽀얗게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내놓았다
어디 가게 되지 않으니
신어 보지도 않고 다시 닦게 된다
어디든 떠나고 싶다.....
얼마나 떠나고 싶으셨을까.........?
한 세기를 이어져온 당신의 삶에서
훌쩍 떠나고 싶으셨던 그 많은 순간들을
어찌 손으로 다 꼽을 수 있을까?
두 손에 꼭 잡으신 공책 속의 글들이
설은 세월 다 말할 수도 없으려니......
헌 내복을 입고 차곡이 쌓아둔 새 내복을 바라보며
무심한 웃음을 지으시는 마음을 어찌 만져 볼 수 있을까?
해 마다 씨앗들을 추스려 담으시는 그 온기를....
당신이 떠나신 뒤에 서 말의 눈물을 쏟은뒤에라도
온전히 헤아릴 수는 있기나 할까?
당신의 흔적들 안에 남은 그 따스함을........
어디 가게 되지 않으니
신어 보지도 않고 다시 닦게 된다
어디든 떠나고 싶다.....
얼마나 떠나고 싶으셨을까.........?
한 세기를 이어져온 당신의 삶에서
훌쩍 떠나고 싶으셨던 그 많은 순간들을
어찌 손으로 다 꼽을 수 있을까?
두 손에 꼭 잡으신 공책 속의 글들이
설은 세월 다 말할 수도 없으려니......
헌 내복을 입고 차곡이 쌓아둔 새 내복을 바라보며
무심한 웃음을 지으시는 마음을 어찌 만져 볼 수 있을까?
해 마다 씨앗들을 추스려 담으시는 그 온기를....
당신이 떠나신 뒤에 서 말의 눈물을 쏟은뒤에라도
온전히 헤아릴 수는 있기나 할까?
당신의 흔적들 안에 남은 그 따스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