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의 눈/이형기


그 해 겨울의 눈은
언제나 한밤중 바다에 내렸다.

희부옇게 한밤중 어둠을 밝히듯
죽은 여름의 반디벌레들이 일제히
싸늘한 불빛으로 어지럽게 흩날렸다.

눈송이는 바다에 녹지 않았다.
녹기 전에 또 다른 송이가 떨어졌다.

사라짐과 나타남
나타남과 사라짐이 함께 돌아가는
무성영화시대의 환상의 필름...

덧없는 목숨을
혼신의 힘으로 확인하는 드라마

클라이맥스밖에 없는 화면들이
관객 없는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언제나 한밤중 바다에 내린
그 해 겨울의 눈
그것은 꽃보다도 화려한 낭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