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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시>첫사랑을 기억해내다/안병기
남해도 앵강만에서
한때 내 마음속에도 저렇게
깊고 푸른 바다가 담겨 있었던 적이 있다.
어느 날 그 바다 안쪽으로
한 여자가 돛단배처럼 미끄러져 들어왔고
내 바다는 한 번 깊게 출렁거렸다.
돛단배가 떠난 이후
내 안의 바다는 오랫동안 설레지 않았다.
시작 노트
남해도 앵강만은 서럽도록 푸른 쪽빛을 가지고 있다. 그 바다는 뭍으로 깊숙이 흘러들어와 웬만해서는 출렁거리지 않는다. 겉에서만 바라보는 앵강만은 항상 정지된 바다이다. 그러나 난 이 앵강만이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지만 내면은 온통 들끓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앵강만의 내면에서 들끓고 있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내가 남해도에 가서 앵강만을 바라보았을 때마다 나의 내면이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들끓었다. 그리움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 불치의 병이다. 그리고 첫사랑은 그리움이라는 불치의 병 가장 안쪽에 붙어 있는 종양이다.
스무 살 청춘의 시절, 내 마음 속에도 앵강만처럼 짙푸른 바다가 있었다. 그 바다에 첫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배 한 척. 그 배가 내 원시의 바다에 처음 닻을 내렸을 때, 나의 수면은 얼마나 깊게 출렁거렸던가.
- 다음 카페 "아름다운 오류"에서 지고 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