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길, 청학동 가는 / 복 효근


눈이 내린다
오던 길 지워버리고
돌아갈 꿈 꾸지 말라고
어머니 탯줄을 떠나듯
뒤돌아보지 말라고

눈 내린다 길을 떠나
길 아닌 길 위에서 길 잃고
나마저 지우며 눈이 내린다
내가 지워진 다음에 오는 것
무엇인가 묻지 말라고
앞산도 집들도 그리운
사람도 지워버리고

눈 내린다 비로소
내가 나의 길이 되어
길 밝혀 가라고
눈이 내린다

어느 눈 그친 새 세상
길 잃어 스스로
길이 된 사람들 함께
지친 어깨 기대고 나란히 가라고
온 세상 지우며 눈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