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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살 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제가 한번은 입 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던 등
해 지면 달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 온 아버지. 병원 욕실에서 아버지의 등을
민다. 자식은 아버지의 등에서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다. 평생 지게를
지고 걸어온 아버지의 인생이 거기 낙인처럼 찍혀 있다.
아버지의 지게 자국을 보며 목욕탕에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날을 떠올린다. 다정한 부자지간이 아닌 것이
원망스럽기도 했었고, 돈 때문에 목욕탕에 가지 않은 거라고 비난했던 말뜰이
떠오르며 자식은 가슴이 미어지게 아파온다. 그러나 아무말 안하고 아버지의
등을 민다.
아버지이지만 자식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자국이 있었던 것이다.
노동의 흔적이면서 가난으로 인한 흉터이기도 한 지게자국. 아버지처럼 살에
낙인이 찍히는 삶을 살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면서도 감추고 살아온 자국
을 본다. 자식의 가슴에 낙인처럼 깊게 박히는 두 줄의 지게자국*.
-시집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