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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천정/이성선
밭둑에서 나는 바람과 놀고
할머니는 메밀밭에서
메밀을 꺾고 계셨습니다
늦여름의 하늘빛이 메밀꽃 위에 빛나고
메밀꽃 사이사이로 할머니는 가끔
나와 바람의 장난을 살피시었습니다
해마다 밭둑에서 자라고
아주 커서도 덜 자란 나는
늘 그러했습니다만
할머니는 저승으로 가버리시고
나도 벌써 몇 년인가
그 일은 까맣게 잊어 버린 후
오늘 저녁 멍석을 펴고
마당에 누우니
온 하늘 가득
별로 피어 있는 어릴적 메밀꽃
할머니는 나를 두고 메밀밭만 저승까지 가져가시어
날마다 저녁이면 메밀밭을 매시며
메밀밭 사이사이로 나를 살피고 계셨습니다
늦여름 저녁 멍석을 펴고 마당에 누웠다. 밤하늘 가득 별이 있다. 얼마나
많이 떴는지 별들이 어릴 적 메밀밭처럼 느껴진다. 어릴 적 그 메밀밭에서
할머니는 메밀을 꺾고 계셨다. 그러다 가끔 밭둑에서 노는 나를 살피곤 하
셨다. 그 할머니 돌아가신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오늘 저녁 문득 할머니가 저승까지 메밀밭을 가져가시어 저녁이면
메밀밭을 매시며 메밀밭 사이사이로 아직도 어리게만 보이는 나를 살피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승에서 아직도 잘 있는지, 어디 위험한 곳으로
가고 있지는 않는지, 못 먹을 걸 집어 먹고 있지는 않는지, 걱정이 되어 밤
마다 나를 살피고 계시는 것처럼 생각된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
-시집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