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풍경 / 홍일표
달이 깨어진다
흩어져 날리는
노오란 꽃잎들
한순간 꽃대만 남아
혼자 걷는 들길
끊일 듯 끊일 듯 다시 이어져
어느덧 강둑에 이르러
늙은 미루나무 위에 오르다.
요란한 매미 소리로 뜨거워지는 저녁 노을
텃밭에서는 붉은 고추가 맹렬히 익어가고,
불로 불을 다스리는 청동의 팔뚝에선
실신한 여름이 굵은 땀방울로 떨어진다
다시 하루가 저물고
깨어진 달이 한 잎 한 잎
제 몸을 수습하여 부풀어 오르는 밤
원시의 동굴 속에선 쿵쿵
푸른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