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아가기/민도식


음악을 잘 몰랐던 내가
어느 날부터인가
음악을 들을 여유를 가지고

영화를 잘 몰랐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신문 하단의 영화프로에
눈을 고정시켰으며

여자의 장신구에 대해
무관심하던 내가
주위 여자들의 장신구를 만져보고
공동의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여유를 잘 몰랐던 내가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웃음을 간직한 사람으로
길을 걷게 되었고

선물이 뭔지 몰랐던 내가
어느 날부터인가 선물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되었고

구속을 무척 싫어했던 내가
누구에게 구속당함을
기뻐서 날뛰게 되었고

편지를 잊고서 살던 내가
그 어느 날부터 정신병자라는
우스게 소리를 들어가면서
열심히 글을 적게 되었고

습작일기를 멀리했던 내가
하루밤에도 몇 편의 시를
단숨에 적어 내릴
정서의 여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