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은 다시 희망의 문을 연다/정호승
      
      
      숭례문은 이제 울지 않는다
      숭례문은 이제 절망하지 않는다
      숭례문은 다시 희망의 문을 연다
      오늘 우리나라의 모든 풀들이 숭례문을 위하여 아리랑을 부른다
      오늘 우리나라의 모든 새들이 숭례문을 위하여 아리랑을 부르며
      한반도의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별들도 숭례문 지붕 위에 우르르 내려앉아 고요히 아리랑을 부르며
      새 시대의 먼동이 트기를 가다린다
      태백산맥을 타고 온 거친 바람이 서울의 봄을 불태워도
      개나리도 목련도 민들레도 한 송이 피어나지 않아도
      잿더미 위에서 봄은 다시 살아나 거룩한 희망과 평화의 춤을 춘다
      빙긋이 침묵의 미소를 지으며 춤추는 저 숭례문의 늠름한 어깻짓을 보라
      죽음의 상처도 묵묵히 견뎌낸 저 인내의 아름다운 자세를 보라
      기차를 타고 고향을 떠나 서울역에 내릴 때마다
      두 팔을 벌리고 힘껏 우리를 안아주던 숭례문이
      이제 다시 가슴을 활짝 열고 어머니처럼 우리를 꼭 껴안아준다
      아버지처럼 팔을 들어 우리의 고단한 어깨를 어루만져준다
      오늘은 숭례문을 드나들던 조선의 지게꾼도 순라꾼도 보이고
      조선 팔도 선비들의 건강하고 성실한 발걸음소리도 들리고
      숭례문 앞에 있었던 연못의 연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소리도 들린다
      이제 숭례문은 분노하지 않는다
      이제 숭례문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
      숭례문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용서의 문
      화해할 수 없는 것을 화해하는 화해의 문
      겨레의 갈등을 끝끝내 통합하는 통합의 문
      새 시대의 희망을 찬란히 여는 미래의 문
      오늘 우리는 숭례문의 문을 열고 신명나게 아리링을 부르며
      봄이 오는 서울의 새벽거리를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