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祖國)-정완영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애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맺힌 열두 줄은 구비 구비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鶴)처럼만 여위느냐.
<1962년 >*************************************************
- [詩 감상: 문태준 시인]
- 정완영(89) 시인은 평생 한국의 정형시인 시조만을 위해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우리는 정완영 시인을 통해 "이 당대, 시조 분야의 숭고한 순교자적 상(像)"(박경용)을 만난다.
시조를 말할 때 가람 이병기와 노산(鷺山) 이은상을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초정(草汀) 김상옥, 이호우를 말하고,
그 뒤에 백수(白水) 정완영을 세워 말한다.
"백랑도천(白浪滔天) 같은 분노도 산진수회처(山盡水廻處)의 석간수 같은 설움도 시조 3장에 다 담으셨다."(조오현) - 박재삼 시인은 정완영 시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숭앙해서 "조용하게 잘 참는 것이 있다"면서
"야단스럽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성품이 그를 시조의 거목이게 했다"고 썼다. - 이 시조는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정완영 시인의 초기 작품이다.
조국의 슬픈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시 〈만경평야에 와서>에서 "애흡다 열루(熱淚)의 땅 내 조국은 날 울리고"라고 썼을 때처럼.
조국을 한 채의 전통악기 가얏고(가야금)에 빗대면서 조국에 대한 큰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옛 시조의 행 배열을 살리면서 시종 장중한 어조로 감칠맛 나는 고유어를 사용했다.
청각에 시각을 한데 버무리는 감각적 이미지의 활용은 압권이다.
가얏고의 서러운 가락이 귀에 들리는 듯하고,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청사(靑史)를 보는 듯하고,
한 마리 학의 고고한 성품을 가슴으로 마주하는 것 같다. - 정완영 시인의 시조는 천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수사와 우주적인 상상력을 자랑한다.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내면/
새 한 마리 날아가며 하늘을 닦아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 빛도 닦으리."(〈초봄〉)같은 시조를 보라. 무릎을 치며 저절로 감탄할밖에. - 이뿐만 아니라 정완영 시인은 정겨운 동시조도 많이 써왔다. 〈분이네 살구나무〉는 대표적이다.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 "시조는 말로만 쓰는 시가 아니라 말과 말의 행간(行間)에 침묵을 더 많이 심어두는 시"라고 말하는
그는
요즘도 매일 간곡하게 시조를 창작한다.
원로 시조시인의 이 창창(滄滄)한 뜻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