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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관음암에서 - 산행기
진리여행 청하 권대욱
일시 : 2006년 4월 22일(토) 10시:30 맑은 후 흐림
산행지 :서울 도봉산 다락능선, 포대능선, 주능선, 관음암
기초교통정보 : 7호선 도봉산역
준비물 : 도시락, 김치, 사탕 몇 알, 커피, 오이 2개(무료), 밀감 몇 개
<산행코스>
입산->>> 도봉산 역(7호선) ->도봉매표소 ->광륜사->녹야원->계곡길->다락능선->포대능선
->포대정상->Y 계곡 ->신선대 -> 도봉주능선 ->관음사->마당바위 ->천축사
->도봉산장 ->도봉서원 ->매표소 하산
어제는 날이 흐리고 비가 온다고 하기에 모처럼의 산행기회를 놓치나 싶어 은근히 걱정을 하였는데, 아침에 맑은 공기와 함께 태양의 빛이 너무도 고운 날이다.
토요일, 지난 주간 내내에 주말부터 어제까지 계속 이어지는 복잡하고 머리 아픈일들이 이제 이 진리여행으로 깨끗하게 정리되고 맑은 마음으로 새로움을 가져 가는 한 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내도 아침에 바쁜 모양이다. 챙겨주면서 연신 뭐라고 하는 것같다, 그러면서도 챙겨 놓는 이유는 또 뭐야?
하늘은 맑고, 구름도 보이지 않으면서도 일기예보와는 달리 따뜻한 것 같다.
그래도 못내 옷은 충분히 준비를 하여, 챙기고 오늘의 목적지인 관음암의 진리여행이 잘 되었으면 하였다.
조반을 마치고 배낭을 모두 챙겨 느지막하게 출발하였다. 1차적인 목적지인 도봉산역에 도착하여 이어지는 마을의 수 없이 많은 가게들을 지나면서 오늘은 등산화와 식수통을 사야할것을 마음속으로 준비하였던 터라 가게를 흘끔 처다보면서 길을 가다가 호주머니에 돈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그냥 들머리쪽으로 갔다. 어느, 메이커에서 25주면 기념이라면서 오이를 두 개씩 포장하여 준다. 고맙기 짝이 없다.
오늘 준비한 것은 정말 허술한 데, 김치 한 가지의 도시락. 그리고 가게에서 구입한 한 개 200원짜리 봉지 커피 4개. 감귤 2,000원어치(5알 정도) 이 정도 밖에 되질 않으니 나에게 오이는 정말 고마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식수도 지난 주 산에서 가져온 약수를 그대로 냉장고에 보관하여 약 0.6L 정도 밖에 준비를 하지 안았다 . 도봉산이야 물은 충분한 곳이기에 이 정도의 준비면 될 것같다는 계산이 있어서이다.
등산화의 가격들이 눈이 휘동그레 질 정도이다. 뱃심이 약한 나로서는 등산화 한 벌의 가격에 충격을 연신 받을 수 밖에 없다. 식수통도 거의 10,000원 꼴이다.
그대로 올라갔다가 하산 길에 생각을 해 보이야겠다.
매표소에서 1,00원을 지불하고 표를 구입하여 입산을 하였다. 구멍이 훵하게 보이는 등산화, 게다가 끈 걸이 마져 또 고장이 났다. ㅡ래도 잘 버티어야지, 뭐
길을 재촉하여 녹야원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전 삼거리의 섹스폰 아저씨가 구슬피 불고 있는 트로트 계통의 노래말을 생각하면서 주머니의 잔 돈을 바구니에 넣어 주곤 걸음을 옮긴다.
장애인인데, 오랫 동안 저 자리에서 섹스폰을 불고 있다. 마음이 애처로운건지, 아니면 음악가로 생각드는거지 모르겠다.
녹야원으로 가는 계곡길은 온통 봄의 꽃들이 지천으로 보인다. 산벚꽃은 꽃잎을 바람에 흩날리면서 산객의 마음을 어지럽힐 태세이다.
진달래는 상당수가 연분홍 빛을 길가의 바닥에 드리우면서 봄의 깊어 가고 있음을 구슬피 알려준다.
작은 개울에는 고기들이 봄을 노래하면서 고운 자태로 유영을 하고 있다.
오름길에 예전 현대생명 근무시절의 후배를 만났다, 하산길이라고 한다, 다음을 기약하곤 가벼운 악수로 작별을 고하였다.
길 가 작은 야생화가 눈을 어지럽힌다. 분홍빛의 제비꽃과 무척 닮았지만, 제비꽃은 아니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지금이야 사진으로 보관하여 있어야 겠다.
깊어가는 봄을 온 몸과 마음으로 누리면서 걸음을 옮기니. 도봉산 녹야원이라는 바위에 세로로 새긴 현판이 보인다.
대웅전만 전통 양식이고 나머지의 요사채는 매우 현대적인 사찰이다. 범종각의 지붕도 양철지붕이다. 이제 머지않은 초파일을 준비하느라 연등이 쭉 걸려있다.
사찰 주면을 깔끔하게 정리한 듯 하다. 대웅전에는 아마도 오른쪽에 보이는 관세음보살님과 왼쪽의 지장보살님으로 미루어 보건데 아미타부처님인 듯 싶다.
합장으로 배려하고 물러 나왔다. 다시 산길을 오르니, 예전에 양반가의 흔적이 남은 건물이 천막을 뒤덮어 쓰고 세월의 무상함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옆의 작은 건물도 무너질까봐 겁이난다.
양지녁의 노란 봄 꽃들의 자태가 앙증맞기 짝이 없고, 새싹들의 귀여움은 한량이 없다. 오른쪽 개울의 맑은 물 빛에는 작은 물고기의 유영이 투영된다.
길을 오르니 삼거리가 나온다. 아마도 오른쪽이 다락능선길로 짐작이 된다. 오늘은 계곡길로 올라가야겠다.
앞 뒤서거니 하시는 한 분이 쉼터에서 배낭을 끄른다, 나도 옆의 바위에 배낭을 끄르고 땀도 훔치고 물도 한 잔, 그리고 감귤을 한 개 꺼내어 잠시의 시간을 보내었다.
어제 아는 분이 한상복님이 작가인 "배려"라는 책을 선물하여 주셨다. 퇴근 후에 밤까지 다 읽어보곤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이 길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내용이 스친다.
한 번 더 생각해보는 날로 잡아야 겠다.
이 곳 쉼터에서 좀 더 올라가서 식사를 하여야 겠다. 벌써 태양은 중천에 보이고, 갈 길은 많이 남았다. 발 길을 재촉하여 계곡길을 오르니 여기도 완연한 봄의 자태를 보여준다,. 갓 선을 보이는 푸른 잎새들, 지천으로 피어있는 진달래의 화사함. 어린 시절에는 저 진달래를 창꽃이라고 하였고 ㅡ 입술이 파래지도록 꽃을 따먹었던 기억이 난다. 경상도 지역이라 아주 이른 봄에 피었던 창꽃, 아련한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흘러간 세월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인가 보다.
걸음을 한 번씩 옮길때마다 점점 힘이든다. 아주 오래 전에 절이 있었을 것같은 곳에 도착을 하였다 사람의 흔적이 보이는 우람한 느티나무, 그리고 넓찍한 공터, 조성된지는 오래지 않았지만 절의 흔적은 없고 외롭게 상륜부가 없어진 석탑이 올로 바위위에서 먼데 산을 바라보고 있다. 건너편의 산행이정표와 동무를 하고 있어보인다. 어쩐 사연이 있을 런지...
벌써 12시 반에 가까워진다. 계곡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능선길이 보이는 듯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니 저 멀리 보문능선길이 보이고 삼각산의 자태가 희미하게 보인다. 우람한 바위에 올라 평평한 곳에서 가져온 음식과 물을 꺼내고 자리를 만들어 쉼터로 삼았다.
꿀 맛같은 식사, 그리고 여유로운 커피 한 잔, 상큼한 오이 후식, 순서가 바뀌어도 내용이 틀려도 아무 상관이 없는 나만의 이 여유, 바로 진리의 여행 중에 가장 즐거운 시점의 한 순간이다.
옷에 베인 땀을 바람에 말리고, 우뚝하니 보이는 능선의 이름모를 암봉과 저 아래 시내를 바라보면서 건너편의 수락산과 불암산을 바라보는 재미 또한 이 산행의 묘미이다.
이 도봉산은 백두대간의 분수령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한북정맥을 따라 철원·포천·양주지방 첩첩의 연봉으로 산경을 이루어 오다가 서울 동북쪽에서 우뚝 솟았으며 우이령을 경계로 북한산에 이어진다. 그 중 망월사의 뒷봉우리를 도봉(道峰)이라 하고, 천축사(天竺寺)의 뒷봉우리를 만장봉(萬丈峰)이라 하는데, 가장 높은 봉우리는 717m의 자운봉(紫雲峰)이다.
화강암의 희고 큰 바위벽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으니 만장봉이 되고, 높은 산봉에 붉은 빛의 아름다운 구름이 걸리니 자운봉이라, 이는 불가에서 상서로운 기운을 뜻한다. 도봉은 조선왕조를 여는 길을 닦았으니 ‘道峰’인가? 뜻있는 지사들이 그 뜻을 키우고자 학문을 연마하고 민생을 구제하고자 道를 닦았으니 ‘道峰’인가? 조선왕조의 흥업이 이 도봉산의 정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있으니, 도봉의 이어진 산줄기가 강원도 철원에서부터 기복을 이루다가 도봉에 와서 머무른 감이 있다. 철원에서 도봉까지의 산줄기를 타고 온 거리가 500리라 하여 조선왕조 500년과 연결지어 만들어 낸 이야기다. 따라서 천축사·회룡사 등 사찰에는 이성계의 왕조 창업과 관련하여 무학대사의 중창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바위에 흙 한 점 한 뼘의 구석도 없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진달래에 눈 길이 머문다. 카메라로 촬영을 하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 생명력의 위대함을 보는 것같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에 어슬렁 거리면서 짐을 다시 챙겨 산길을 오르니 눈에 익은 길이 보인다. 드디어 다락능선에 진입하였나 보다. 개활지에서 여러 산님들이 왼쪽으로 보이는 도봉산의 정상부를 바라보시면서 연달아 감탄사를 내뿜고 있다.
아마득하게 보이는 석굴암의 전경, 그리고 하늘까지 뻗친 듯한 선인봉의 웅장하고 우람한 자태, 자일을 타고 올라가는 산님들의 모습은 그저 한 개의 점으로 보인다.
겨울철과는 또 다른 멋스러움이 연출된다. 자연의 신비인거 보다, 같은 사물이지만 또 계절에 따라 달리 보이는 이것, 참으로 오묘한 자연의 조화인가 보다.
전 번의 산행길보다는 더 여유가 있어서 인지. 주변의 전경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색다른 풍경도 눈에 많이 들어오는 것 같다. 주능선의 푸르름, 태양빛을 가득히 받고 있는 삼각산의 뿌여 조망, 저 멀리 보문능선과 그 정상부의 우이암이 가깝게 보인다.
가갑게 보이는 곳에는 화사한 산꽃들의 축제가 벌어지고 소나무의 아랫면에는 진달래가 어느 곳에서나 지천으로 이 봄을 노래하고 있는 것같다.
반대편에 보이는 망월사의 모습도 전일의 비 오던 날과는 여전히비교되고, 또 건너에서 바라보니 참으로 경건하게 보인다. 포대능선을 뒤로하고 묵연히 그 웅장하고 거룩한 절집의 모습을 여유롭게 보여준다
제일 높게 보이는 영산전을 필두로 포대능선의 멋스런 바위들과 어울림을 더하여 더욱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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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노래 - 6. 망월사
청하 권대욱
꿈속 창공의 푸른 달이 그리워
나는 망월이라 부르리라
월봉을 바라보는 토공의 그리움이
보이길래 나는 망월이라 부르리라
늦갈바람은 작은 언덕을 지나가고
천년이끼는 솔바람에 잠들어버렸건만
말 없는 님은 멀리 만장봉을 처다보네
구름빛이 드리워진 이 산자락에서
남녁의 월성 바라보며 말이 없노메라
어이타 천년세월을 그리도 그리워하는가
도봉산 안개비는 이제나 그치려나
나그네의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여라
약수물 한사발은 그저 감로수이건만
나그네의 번뇌는 언제 씻어가려나
신선대 구름속에서 날려보낸 한맺힘도
이제는 붉은 마음으로 남을 진대
풍경소리도 이 바람에는 들리지않고
석양을 노래하던 돌이끼 부도탑에는
천봉당 태흘 주장자소리 칠것같고
종각 추녀에 걸린 저 산능선에는
솔바람이 나그네길 재촉하구나
낙가보전 저 멀리 천수관음미소띠고
가녀린 보살님네 지극정성 굽어보시네
어허라 세상이야 그저 둘아님을 모르니
나그네길 멈추어 도솔을 처다볼세라
산록 해 그림자 길어지니 그 맘이 변하고
안개구름 걷혀가니 이맘도 맑아지네
이제사 내 마음이 바람같아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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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대능선을 지나가는 안개는
참으로 고즈녁한 망월사에서
나그네의 발걸음을
그리도 묶어놓더이다... 청하 권대욱의 망월사 전문
다락능선의 정상부, 갈림길이다.. 지난번에 갔던 길 대신에 우회하였다. 이 우회하는 길은 우회가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의 포대능선의 한 줄기 지점에 도착하게 한다.
능선에 도착하여 다시 포대정상부로 발걸음을 옮겨 정상부에서 웅장한 선인봉, 만장봉, 그리고 최고봉인 자운봉을 다시 눈으로 마음속에 새겨 넣었다. 신선대에는 산님들이 엄청 많은 것같다. 오늘은 선인봉에도, 만장봉에도 산님의 모습이 보인다. 대단한 분들로 짐작된다.
한참 웅장한 정상부를 조망하다가 처음으로 가보는 Y 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산길은 외길이면서도 거의 직벽에 가까운 곳이라 질서정연치 않으면 서로 불편을 주고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하는 곳이다.
다들 조심 조심 걸음을 옮기고, 발 놓음을 가르쳐주는 분, 안전을 당부하시는 분, 간혹은 간담을 서늘하게 다람쥐 흉내를 내시는 산님들을 빙그래 웃음으로 보면서 통과를 하니 시원한 바람이 스친다. 아마도 솔바람일것이다.
눈앞에 자운봉이다. 그리고 신선대가 손에 잡힐 듯하다.
갈림길에서 다시 약간 내림길을 택하여 신선대로 오르는 길로하여 신선애에 올랐다. 이 도봉산에서 신선대는 특별한 장비나 기술이 없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오늘은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온다. 그래도 신선대에서 보면 방금지나온 포대능선길과 저 멀리 북쪽의 사패산이 잘 조망될 뿐더러, 그 아래의 의정부시도 그러하고 사패능선길과 포대능선의 제준봉들이 환하게 보인다. 동쪽으로는 수락산이 뚜렷이 보이고 불암산 용마산까지도 자세히게 볼 수 있다. 칼바위능선의 여러 봉우리와 우이암이, 보문능선이 아름답게 보인다,그리고 서쪽으로는 도봉산의 속 모습을 확연히 보여주기에 아마도 도봉산에 오른면 이곳에 오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같다. 오늘로서 세번째로 기억된다.
기념촬영을 하고 조망 후에 조심스럽게 내려와서 도봉주능선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 희미하게 오봉의 일봉과 이봉이 조금씩 보인다.
발걸음을 옮겨 능선의 무명봉에서 도봉산의 정상부를 다시 뒤돌아 보니 가까운 주봉의 멋진 모습, 그리고 신선대와 겹쳐보이는 자운봉, 약간 내림길의 선인봉, 정말 장관이다 . 어쩌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지..
무명봉에서 커피를 한 잔타서 마시면서 배려에 대한 생각과 아름다운 경치에 대한 생각이 뒤섞임을 느끼면서 갈을 나서서 오봉갈래길을 지나 하산길을 택하였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간 것같다.
아랫길을 택하여 내려가다 다시 왼쪽으로 가면 관음암이 나온다. 호젖한 산 길이다. 아름다운 진달래의 봉오리 맺음, 그리고 양지쪽의 화사함, 절벽의 소나무의 생명력, 노간주의 곧게 크는 자태, 이름모를 야생화의 노래를 지나 청설모가 노닐고 까마귀가 맴도는 산 길을 지나니 드디어 오늘의 주 목적지인 관음암에 도착하였다. 그냥 바로 오면 될 것이지만 빙둘러 오는 것 또한 산행의 즐거움을 같이 하기에 굳이 어렵게 오는 것이다. 바위가 기묘하게도 그냥 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작은 돌멩이 몇 개가 없다면 아마도 떠 있으려니 할 것이다. 지나니 산신각, 그리고 산신각 앞의 큰 바위. 이 큰 바위 아래에 제불보살님을 모셨다. 크기는 크질 않지만, 이 산속에 불보살님들을 모신다는 것, 그리고 큰 바위가 천정이 되어 있음 도한 묘하다. 산신각을 지나 관음암의 대웅전(극락보전)은 도봉산의 주능선을 뒤로 끼고 혼자서 미륵봉산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극락보전에서 칠정례륻 드리고 호법신중전에 합장, 관세음보살탱화와 그리고 다른 탱화를 보았다, 아마도 조금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유리액자로 보호하고 있었다.
규모는 크질 않지만 아마도 이 도봉산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절집, 가장 험준한 곳에 자리하고 있지않나는 생각이든다.
이곳은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던 장소로 전해지고 있고 천축사와는 지금은 별개의 사찰로 독립되었다.
신발만 두어켤레 보이고 ..그냥 물 한모금 마시고 참배후 마당바위 쪽으로 하산하여 마당바위에서 잠시 쉬다가 천축사로 향하였다
도봉산 입구에 있는 목필균님의 천축산 가는 길을 적어본다
<천축사 가는 길>
목필균
먼 산빛을 친구 삼아
도봉산에 오르면
천축사 가는 길은 열려있다.
젊은 까치 소리에 눈웃음 치고
이름 모를 풀꽃에도 손길을 주며
한 걸음 한 걸음 산길을 걸으면
노래하듯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가
오히려 내 갈 길을 재촉하니 재미있다.
도봉산을 품어 안은
천축사의 끝없는 도량을 향해
일상의 상념들을 날려보내면
근심은 바람 되어 맴돌다 사라진다.
티끌 같은 몸뚱이에 자리잡은
바위 만한 욕심덩이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되돌아보는 시간.
천축사 가는 길은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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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축사는 깍아지른 듯한 만장봉을 배경삼아 소나무, 단풍나무 등이 울창한 수목 속에 조용하고 경관이 뛰어난 참선도량으로 이름이 높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교구로 조계사에 속해 있다고 하며. 673년에 의상(義湘)이 수도하면서 현재의 자리에 옥천암(玉泉庵)이라는 암자를 세웠고, 고려 명종 때 영국사(寧國寺)가 들어섰으며, 1398 조선 태조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렸다 하여 절을 새롭게 고치고 천축사라고 이름을 바꾸었다한다. 1474년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조선 명종 때 문정왕후(文貞王后)가 화류용상(樺榴龍床)을 절에 바치고 불당 안에 부처를 모시는 불좌(佛座)를 만들었으며. 그 뒤 여러 번 다시 고쳐 지었으며, 법당 안에는 석가삼존상과 지장보살상을 비롯해 삼세불화·지장탱화·신중탱화가 모셔 두었다. 대웅전·원통전·복운각·산신각·요사채·무문관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맑고 깨끗한 석간수가 유명하고 백년 묵은 보리수나무가 샘물 위쪽에 있다.이 천축사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와 거대한 향나무도 보인다.
천축사라고 한것은 지공화상이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에게 이곳의 경관이 인도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이 절은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이름이 나서 기도 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곳에 참선장소인 무문관이 있는데 부처님의 설산 6년 고행을 본받아 한번 들어가면 4년 또는 6년 동안 일체 문 밖에 나올 수 없고 벽을 바라보며 참섬만 하게 된다. 음식물도 창구를 통해 들여 보내는 등 수행의 규범이 철저하다. 현대의 큰 스님 중에는 이 무문관에서 정진한 분들이 많다.
1989년에는 종각이 세워졌다고 하며 범종(1300관)은 여러 학자들의 고증으로 옛 멋과 아름다움을 재현한 것으로 그 소리가 그지없이 청량하며 마치 부처님의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고 한다. 아직은 한 번 들어보아여지 하는 마음 뿐이다.
천축의 이름은 본디 부처님의 나라 인도를 말함이나 이 절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천축은 바로 우리들 자신의 순수한 깨어있는 마음이며 모든 어둠과 두려움, 고통이 해방된 평화와 축복이 현존하는 정토(빛)의 세계이기도 하다. 천축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만나게 하는 곳이며 또한 부처님께 일심으로 기도를 드리며 소망을 이루는 도량이다.
천축사는 일주문이 없으나, 절 입구에 바로 제불보살님이 질서정연하게 자리하고 계신다. 참배를 드리고 뒤쪽으로 가면 지금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모든 전각들을 새로 중창하는 불사가 한창이다. 대우전에는 거의 탱화가 끝나가지만 다른 곳은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인데, 그래도 주변 경관이 빼어나고 도봉산을 등정하는 길목이라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대웅전과 원통전. 독성각. 산식각의 참배는 할 수 있다.
일전에 갈적에는 석굴암 부처님께 참배를 하였으나 오늘은 더욱 어수선하여 그만 옥천수만 마시고 다음을 기약하였다.
발걸음을 옮기니 하산길이고 드디어 도봉산장에 도착하게 된다 입구에는 경험이 많은 분들인것처럼 보이는 릿지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보인다.
호기심에 한참을 보다가 계속 길을 내려오니 금강암이 보인다. 이제 다 내려온것 같다.
이 도봉산은 아직은 많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우이암 방면으로 오르는 보문능선이 있고, 또 다락능선과 회룡사가 있는 회룡능선, 그리고 망월사쪽의 길이 있으며 포대능선을 통하여 사패산으로 갈 수도, 그라고 안골계곡을 통하여 의정부로 하산할 수 있었다. 웅장한 바위의 모임인 오봉능선을 다녀보기도 하였다.
잠시 지난 흔적을 생각하며 걷다보니 벌써 길 왼편에 도봉서원이 보인다. 이 서원은 서울에 소재한 현존하는 유일한 서원이란다.
1573년(선조6)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선생의 학문적 사상과 덕행을 추모하고 도학(道學)을 강의하여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창건해서 다음해에 사액(賜額)을 받았다. 1696년(숙종22)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선생을 병향(竝享:위패를 나란하게 모심)하고, 1755년(영조51) 영조대왕의 친필현판을 받아 어필사액서원(御筆賜額書院)이 되었다.
인근의 계곡바위에 우암선생의 친필을 새긴 '도봉동문(道峯洞門)'과 역시 주자의 시를 우암선생이 대자로 써서 새긴 '제월광풍갱별전(霽月光風更別傳) 료장현송답잔원(聊蔣絃誦答潺湲)'이란 암각문을 비롯하여, 김수항, 권상하, 이재 등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남긴 여러 암각문들이 계곡 주변에 남아 있다.
내 눈으로 직접 본것인 우암선생의 글과 김수항 선생의 물에 일부 잠겨있는 고산앙지(高山仰止)암각을 확인하여 보았다.
다시 눈에 들어오는 섹스폰 아저씨, 그리고 아침에 올라가기 시작했던 녹야원방면의 이정표, 헤어지고 다시만나고 하는 반복의 길, 내가 걸어가는 이 진리의 여행길도 그러하리라.
뒤 돌아보니 여전히 산록들은 즐거운 봄의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나를 용서하고 남을 용서하고, 현재의 입장을 남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여보고, 좀 더 넓게 높은 산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리라.
진리를 멀리서 찾지 아니하고 내 자신에서 진리를 찾아 보리라
해가 많이 길어졌건만 이제는 좀 있으면 해가 져버릴 태세가 보인다.
배려를 생각하고, 마음에 남은 번뇌를 씻어내고 진리의 고향을 찾아 다니는 여행길 오늘의 진리여행길도 이렇게 마무리하여 본다.
길 가의 아직은 늦봄을 장식하는 목련의 하이얀 빛이 무척 고와 보인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의 하이얀 빛이 이 밤을 아름답게 수 놓을 것같다. 끝
진리여행 청하 권대욱
일시 : 2006년 4월 22일(토) 10시:30 맑은 후 흐림
산행지 :서울 도봉산 다락능선, 포대능선, 주능선, 관음암
기초교통정보 : 7호선 도봉산역
준비물 : 도시락, 김치, 사탕 몇 알, 커피, 오이 2개(무료), 밀감 몇 개
<산행코스>
입산->>> 도봉산 역(7호선) ->도봉매표소 ->광륜사->녹야원->계곡길->다락능선->포대능선
->포대정상->Y 계곡 ->신선대 -> 도봉주능선 ->관음사->마당바위 ->천축사
->도봉산장 ->도봉서원 ->매표소 하산
어제는 날이 흐리고 비가 온다고 하기에 모처럼의 산행기회를 놓치나 싶어 은근히 걱정을 하였는데, 아침에 맑은 공기와 함께 태양의 빛이 너무도 고운 날이다.
토요일, 지난 주간 내내에 주말부터 어제까지 계속 이어지는 복잡하고 머리 아픈일들이 이제 이 진리여행으로 깨끗하게 정리되고 맑은 마음으로 새로움을 가져 가는 한 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내도 아침에 바쁜 모양이다. 챙겨주면서 연신 뭐라고 하는 것같다, 그러면서도 챙겨 놓는 이유는 또 뭐야?
하늘은 맑고, 구름도 보이지 않으면서도 일기예보와는 달리 따뜻한 것 같다.
그래도 못내 옷은 충분히 준비를 하여, 챙기고 오늘의 목적지인 관음암의 진리여행이 잘 되었으면 하였다.
조반을 마치고 배낭을 모두 챙겨 느지막하게 출발하였다. 1차적인 목적지인 도봉산역에 도착하여 이어지는 마을의 수 없이 많은 가게들을 지나면서 오늘은 등산화와 식수통을 사야할것을 마음속으로 준비하였던 터라 가게를 흘끔 처다보면서 길을 가다가 호주머니에 돈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그냥 들머리쪽으로 갔다. 어느, 메이커에서 25주면 기념이라면서 오이를 두 개씩 포장하여 준다. 고맙기 짝이 없다.
오늘 준비한 것은 정말 허술한 데, 김치 한 가지의 도시락. 그리고 가게에서 구입한 한 개 200원짜리 봉지 커피 4개. 감귤 2,000원어치(5알 정도) 이 정도 밖에 되질 않으니 나에게 오이는 정말 고마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식수도 지난 주 산에서 가져온 약수를 그대로 냉장고에 보관하여 약 0.6L 정도 밖에 준비를 하지 안았다 . 도봉산이야 물은 충분한 곳이기에 이 정도의 준비면 될 것같다는 계산이 있어서이다.
등산화의 가격들이 눈이 휘동그레 질 정도이다. 뱃심이 약한 나로서는 등산화 한 벌의 가격에 충격을 연신 받을 수 밖에 없다. 식수통도 거의 10,000원 꼴이다.
그대로 올라갔다가 하산 길에 생각을 해 보이야겠다.
매표소에서 1,00원을 지불하고 표를 구입하여 입산을 하였다. 구멍이 훵하게 보이는 등산화, 게다가 끈 걸이 마져 또 고장이 났다. ㅡ래도 잘 버티어야지, 뭐
길을 재촉하여 녹야원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전 삼거리의 섹스폰 아저씨가 구슬피 불고 있는 트로트 계통의 노래말을 생각하면서 주머니의 잔 돈을 바구니에 넣어 주곤 걸음을 옮긴다.
장애인인데, 오랫 동안 저 자리에서 섹스폰을 불고 있다. 마음이 애처로운건지, 아니면 음악가로 생각드는거지 모르겠다.
녹야원으로 가는 계곡길은 온통 봄의 꽃들이 지천으로 보인다. 산벚꽃은 꽃잎을 바람에 흩날리면서 산객의 마음을 어지럽힐 태세이다.
진달래는 상당수가 연분홍 빛을 길가의 바닥에 드리우면서 봄의 깊어 가고 있음을 구슬피 알려준다.
작은 개울에는 고기들이 봄을 노래하면서 고운 자태로 유영을 하고 있다.
오름길에 예전 현대생명 근무시절의 후배를 만났다, 하산길이라고 한다, 다음을 기약하곤 가벼운 악수로 작별을 고하였다.
길 가 작은 야생화가 눈을 어지럽힌다. 분홍빛의 제비꽃과 무척 닮았지만, 제비꽃은 아니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지금이야 사진으로 보관하여 있어야 겠다.
깊어가는 봄을 온 몸과 마음으로 누리면서 걸음을 옮기니. 도봉산 녹야원이라는 바위에 세로로 새긴 현판이 보인다.
대웅전만 전통 양식이고 나머지의 요사채는 매우 현대적인 사찰이다. 범종각의 지붕도 양철지붕이다. 이제 머지않은 초파일을 준비하느라 연등이 쭉 걸려있다.
사찰 주면을 깔끔하게 정리한 듯 하다. 대웅전에는 아마도 오른쪽에 보이는 관세음보살님과 왼쪽의 지장보살님으로 미루어 보건데 아미타부처님인 듯 싶다.
합장으로 배려하고 물러 나왔다. 다시 산길을 오르니, 예전에 양반가의 흔적이 남은 건물이 천막을 뒤덮어 쓰고 세월의 무상함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옆의 작은 건물도 무너질까봐 겁이난다.
양지녁의 노란 봄 꽃들의 자태가 앙증맞기 짝이 없고, 새싹들의 귀여움은 한량이 없다. 오른쪽 개울의 맑은 물 빛에는 작은 물고기의 유영이 투영된다.
길을 오르니 삼거리가 나온다. 아마도 오른쪽이 다락능선길로 짐작이 된다. 오늘은 계곡길로 올라가야겠다.
앞 뒤서거니 하시는 한 분이 쉼터에서 배낭을 끄른다, 나도 옆의 바위에 배낭을 끄르고 땀도 훔치고 물도 한 잔, 그리고 감귤을 한 개 꺼내어 잠시의 시간을 보내었다.
어제 아는 분이 한상복님이 작가인 "배려"라는 책을 선물하여 주셨다. 퇴근 후에 밤까지 다 읽어보곤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이 길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내용이 스친다.
한 번 더 생각해보는 날로 잡아야 겠다.
이 곳 쉼터에서 좀 더 올라가서 식사를 하여야 겠다. 벌써 태양은 중천에 보이고, 갈 길은 많이 남았다. 발 길을 재촉하여 계곡길을 오르니 여기도 완연한 봄의 자태를 보여준다,. 갓 선을 보이는 푸른 잎새들, 지천으로 피어있는 진달래의 화사함. 어린 시절에는 저 진달래를 창꽃이라고 하였고 ㅡ 입술이 파래지도록 꽃을 따먹었던 기억이 난다. 경상도 지역이라 아주 이른 봄에 피었던 창꽃, 아련한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흘러간 세월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인가 보다.
걸음을 한 번씩 옮길때마다 점점 힘이든다. 아주 오래 전에 절이 있었을 것같은 곳에 도착을 하였다 사람의 흔적이 보이는 우람한 느티나무, 그리고 넓찍한 공터, 조성된지는 오래지 않았지만 절의 흔적은 없고 외롭게 상륜부가 없어진 석탑이 올로 바위위에서 먼데 산을 바라보고 있다. 건너편의 산행이정표와 동무를 하고 있어보인다. 어쩐 사연이 있을 런지...
벌써 12시 반에 가까워진다. 계곡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능선길이 보이는 듯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니 저 멀리 보문능선길이 보이고 삼각산의 자태가 희미하게 보인다. 우람한 바위에 올라 평평한 곳에서 가져온 음식과 물을 꺼내고 자리를 만들어 쉼터로 삼았다.
꿀 맛같은 식사, 그리고 여유로운 커피 한 잔, 상큼한 오이 후식, 순서가 바뀌어도 내용이 틀려도 아무 상관이 없는 나만의 이 여유, 바로 진리의 여행 중에 가장 즐거운 시점의 한 순간이다.
옷에 베인 땀을 바람에 말리고, 우뚝하니 보이는 능선의 이름모를 암봉과 저 아래 시내를 바라보면서 건너편의 수락산과 불암산을 바라보는 재미 또한 이 산행의 묘미이다.
이 도봉산은 백두대간의 분수령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한북정맥을 따라 철원·포천·양주지방 첩첩의 연봉으로 산경을 이루어 오다가 서울 동북쪽에서 우뚝 솟았으며 우이령을 경계로 북한산에 이어진다. 그 중 망월사의 뒷봉우리를 도봉(道峰)이라 하고, 천축사(天竺寺)의 뒷봉우리를 만장봉(萬丈峰)이라 하는데, 가장 높은 봉우리는 717m의 자운봉(紫雲峰)이다.
화강암의 희고 큰 바위벽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으니 만장봉이 되고, 높은 산봉에 붉은 빛의 아름다운 구름이 걸리니 자운봉이라, 이는 불가에서 상서로운 기운을 뜻한다. 도봉은 조선왕조를 여는 길을 닦았으니 ‘道峰’인가? 뜻있는 지사들이 그 뜻을 키우고자 학문을 연마하고 민생을 구제하고자 道를 닦았으니 ‘道峰’인가? 조선왕조의 흥업이 이 도봉산의 정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있으니, 도봉의 이어진 산줄기가 강원도 철원에서부터 기복을 이루다가 도봉에 와서 머무른 감이 있다. 철원에서 도봉까지의 산줄기를 타고 온 거리가 500리라 하여 조선왕조 500년과 연결지어 만들어 낸 이야기다. 따라서 천축사·회룡사 등 사찰에는 이성계의 왕조 창업과 관련하여 무학대사의 중창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바위에 흙 한 점 한 뼘의 구석도 없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진달래에 눈 길이 머문다. 카메라로 촬영을 하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 생명력의 위대함을 보는 것같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에 어슬렁 거리면서 짐을 다시 챙겨 산길을 오르니 눈에 익은 길이 보인다. 드디어 다락능선에 진입하였나 보다. 개활지에서 여러 산님들이 왼쪽으로 보이는 도봉산의 정상부를 바라보시면서 연달아 감탄사를 내뿜고 있다.
아마득하게 보이는 석굴암의 전경, 그리고 하늘까지 뻗친 듯한 선인봉의 웅장하고 우람한 자태, 자일을 타고 올라가는 산님들의 모습은 그저 한 개의 점으로 보인다.
겨울철과는 또 다른 멋스러움이 연출된다. 자연의 신비인거 보다, 같은 사물이지만 또 계절에 따라 달리 보이는 이것, 참으로 오묘한 자연의 조화인가 보다.
전 번의 산행길보다는 더 여유가 있어서 인지. 주변의 전경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색다른 풍경도 눈에 많이 들어오는 것 같다. 주능선의 푸르름, 태양빛을 가득히 받고 있는 삼각산의 뿌여 조망, 저 멀리 보문능선과 그 정상부의 우이암이 가깝게 보인다.
가갑게 보이는 곳에는 화사한 산꽃들의 축제가 벌어지고 소나무의 아랫면에는 진달래가 어느 곳에서나 지천으로 이 봄을 노래하고 있는 것같다.
반대편에 보이는 망월사의 모습도 전일의 비 오던 날과는 여전히비교되고, 또 건너에서 바라보니 참으로 경건하게 보인다. 포대능선을 뒤로하고 묵연히 그 웅장하고 거룩한 절집의 모습을 여유롭게 보여준다
제일 높게 보이는 영산전을 필두로 포대능선의 멋스런 바위들과 어울림을 더하여 더욱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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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노래 - 6. 망월사
청하 권대욱
꿈속 창공의 푸른 달이 그리워
나는 망월이라 부르리라
월봉을 바라보는 토공의 그리움이
보이길래 나는 망월이라 부르리라
늦갈바람은 작은 언덕을 지나가고
천년이끼는 솔바람에 잠들어버렸건만
말 없는 님은 멀리 만장봉을 처다보네
구름빛이 드리워진 이 산자락에서
남녁의 월성 바라보며 말이 없노메라
어이타 천년세월을 그리도 그리워하는가
도봉산 안개비는 이제나 그치려나
나그네의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여라
약수물 한사발은 그저 감로수이건만
나그네의 번뇌는 언제 씻어가려나
신선대 구름속에서 날려보낸 한맺힘도
이제는 붉은 마음으로 남을 진대
풍경소리도 이 바람에는 들리지않고
석양을 노래하던 돌이끼 부도탑에는
천봉당 태흘 주장자소리 칠것같고
종각 추녀에 걸린 저 산능선에는
솔바람이 나그네길 재촉하구나
낙가보전 저 멀리 천수관음미소띠고
가녀린 보살님네 지극정성 굽어보시네
어허라 세상이야 그저 둘아님을 모르니
나그네길 멈추어 도솔을 처다볼세라
산록 해 그림자 길어지니 그 맘이 변하고
안개구름 걷혀가니 이맘도 맑아지네
이제사 내 마음이 바람같아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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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대능선을 지나가는 안개는
참으로 고즈녁한 망월사에서
나그네의 발걸음을
그리도 묶어놓더이다... 청하 권대욱의 망월사 전문
다락능선의 정상부, 갈림길이다.. 지난번에 갔던 길 대신에 우회하였다. 이 우회하는 길은 우회가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의 포대능선의 한 줄기 지점에 도착하게 한다.
능선에 도착하여 다시 포대정상부로 발걸음을 옮겨 정상부에서 웅장한 선인봉, 만장봉, 그리고 최고봉인 자운봉을 다시 눈으로 마음속에 새겨 넣었다. 신선대에는 산님들이 엄청 많은 것같다. 오늘은 선인봉에도, 만장봉에도 산님의 모습이 보인다. 대단한 분들로 짐작된다.
한참 웅장한 정상부를 조망하다가 처음으로 가보는 Y 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산길은 외길이면서도 거의 직벽에 가까운 곳이라 질서정연치 않으면 서로 불편을 주고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하는 곳이다.
다들 조심 조심 걸음을 옮기고, 발 놓음을 가르쳐주는 분, 안전을 당부하시는 분, 간혹은 간담을 서늘하게 다람쥐 흉내를 내시는 산님들을 빙그래 웃음으로 보면서 통과를 하니 시원한 바람이 스친다. 아마도 솔바람일것이다.
눈앞에 자운봉이다. 그리고 신선대가 손에 잡힐 듯하다.
갈림길에서 다시 약간 내림길을 택하여 신선대로 오르는 길로하여 신선애에 올랐다. 이 도봉산에서 신선대는 특별한 장비나 기술이 없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오늘은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온다. 그래도 신선대에서 보면 방금지나온 포대능선길과 저 멀리 북쪽의 사패산이 잘 조망될 뿐더러, 그 아래의 의정부시도 그러하고 사패능선길과 포대능선의 제준봉들이 환하게 보인다. 동쪽으로는 수락산이 뚜렷이 보이고 불암산 용마산까지도 자세히게 볼 수 있다. 칼바위능선의 여러 봉우리와 우이암이, 보문능선이 아름답게 보인다,그리고 서쪽으로는 도봉산의 속 모습을 확연히 보여주기에 아마도 도봉산에 오른면 이곳에 오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같다. 오늘로서 세번째로 기억된다.
기념촬영을 하고 조망 후에 조심스럽게 내려와서 도봉주능선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 희미하게 오봉의 일봉과 이봉이 조금씩 보인다.
발걸음을 옮겨 능선의 무명봉에서 도봉산의 정상부를 다시 뒤돌아 보니 가까운 주봉의 멋진 모습, 그리고 신선대와 겹쳐보이는 자운봉, 약간 내림길의 선인봉, 정말 장관이다 . 어쩌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지..
무명봉에서 커피를 한 잔타서 마시면서 배려에 대한 생각과 아름다운 경치에 대한 생각이 뒤섞임을 느끼면서 갈을 나서서 오봉갈래길을 지나 하산길을 택하였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간 것같다.
아랫길을 택하여 내려가다 다시 왼쪽으로 가면 관음암이 나온다. 호젖한 산 길이다. 아름다운 진달래의 봉오리 맺음, 그리고 양지쪽의 화사함, 절벽의 소나무의 생명력, 노간주의 곧게 크는 자태, 이름모를 야생화의 노래를 지나 청설모가 노닐고 까마귀가 맴도는 산 길을 지나니 드디어 오늘의 주 목적지인 관음암에 도착하였다. 그냥 바로 오면 될 것이지만 빙둘러 오는 것 또한 산행의 즐거움을 같이 하기에 굳이 어렵게 오는 것이다. 바위가 기묘하게도 그냥 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작은 돌멩이 몇 개가 없다면 아마도 떠 있으려니 할 것이다. 지나니 산신각, 그리고 산신각 앞의 큰 바위. 이 큰 바위 아래에 제불보살님을 모셨다. 크기는 크질 않지만, 이 산속에 불보살님들을 모신다는 것, 그리고 큰 바위가 천정이 되어 있음 도한 묘하다. 산신각을 지나 관음암의 대웅전(극락보전)은 도봉산의 주능선을 뒤로 끼고 혼자서 미륵봉산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극락보전에서 칠정례륻 드리고 호법신중전에 합장, 관세음보살탱화와 그리고 다른 탱화를 보았다, 아마도 조금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유리액자로 보호하고 있었다.
규모는 크질 않지만 아마도 이 도봉산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절집, 가장 험준한 곳에 자리하고 있지않나는 생각이든다.
이곳은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던 장소로 전해지고 있고 천축사와는 지금은 별개의 사찰로 독립되었다.
신발만 두어켤레 보이고 ..그냥 물 한모금 마시고 참배후 마당바위 쪽으로 하산하여 마당바위에서 잠시 쉬다가 천축사로 향하였다
도봉산 입구에 있는 목필균님의 천축산 가는 길을 적어본다
<천축사 가는 길>
목필균
먼 산빛을 친구 삼아
도봉산에 오르면
천축사 가는 길은 열려있다.
젊은 까치 소리에 눈웃음 치고
이름 모를 풀꽃에도 손길을 주며
한 걸음 한 걸음 산길을 걸으면
노래하듯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가
오히려 내 갈 길을 재촉하니 재미있다.
도봉산을 품어 안은
천축사의 끝없는 도량을 향해
일상의 상념들을 날려보내면
근심은 바람 되어 맴돌다 사라진다.
티끌 같은 몸뚱이에 자리잡은
바위 만한 욕심덩이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되돌아보는 시간.
천축사 가는 길은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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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축사는 깍아지른 듯한 만장봉을 배경삼아 소나무, 단풍나무 등이 울창한 수목 속에 조용하고 경관이 뛰어난 참선도량으로 이름이 높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교구로 조계사에 속해 있다고 하며. 673년에 의상(義湘)이 수도하면서 현재의 자리에 옥천암(玉泉庵)이라는 암자를 세웠고, 고려 명종 때 영국사(寧國寺)가 들어섰으며, 1398 조선 태조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렸다 하여 절을 새롭게 고치고 천축사라고 이름을 바꾸었다한다. 1474년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조선 명종 때 문정왕후(文貞王后)가 화류용상(樺榴龍床)을 절에 바치고 불당 안에 부처를 모시는 불좌(佛座)를 만들었으며. 그 뒤 여러 번 다시 고쳐 지었으며, 법당 안에는 석가삼존상과 지장보살상을 비롯해 삼세불화·지장탱화·신중탱화가 모셔 두었다. 대웅전·원통전·복운각·산신각·요사채·무문관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맑고 깨끗한 석간수가 유명하고 백년 묵은 보리수나무가 샘물 위쪽에 있다.이 천축사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와 거대한 향나무도 보인다.
천축사라고 한것은 지공화상이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에게 이곳의 경관이 인도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이 절은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이름이 나서 기도 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곳에 참선장소인 무문관이 있는데 부처님의 설산 6년 고행을 본받아 한번 들어가면 4년 또는 6년 동안 일체 문 밖에 나올 수 없고 벽을 바라보며 참섬만 하게 된다. 음식물도 창구를 통해 들여 보내는 등 수행의 규범이 철저하다. 현대의 큰 스님 중에는 이 무문관에서 정진한 분들이 많다.
1989년에는 종각이 세워졌다고 하며 범종(1300관)은 여러 학자들의 고증으로 옛 멋과 아름다움을 재현한 것으로 그 소리가 그지없이 청량하며 마치 부처님의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고 한다. 아직은 한 번 들어보아여지 하는 마음 뿐이다.
천축의 이름은 본디 부처님의 나라 인도를 말함이나 이 절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천축은 바로 우리들 자신의 순수한 깨어있는 마음이며 모든 어둠과 두려움, 고통이 해방된 평화와 축복이 현존하는 정토(빛)의 세계이기도 하다. 천축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만나게 하는 곳이며 또한 부처님께 일심으로 기도를 드리며 소망을 이루는 도량이다.
천축사는 일주문이 없으나, 절 입구에 바로 제불보살님이 질서정연하게 자리하고 계신다. 참배를 드리고 뒤쪽으로 가면 지금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모든 전각들을 새로 중창하는 불사가 한창이다. 대우전에는 거의 탱화가 끝나가지만 다른 곳은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인데, 그래도 주변 경관이 빼어나고 도봉산을 등정하는 길목이라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대웅전과 원통전. 독성각. 산식각의 참배는 할 수 있다.
일전에 갈적에는 석굴암 부처님께 참배를 하였으나 오늘은 더욱 어수선하여 그만 옥천수만 마시고 다음을 기약하였다.
발걸음을 옮기니 하산길이고 드디어 도봉산장에 도착하게 된다 입구에는 경험이 많은 분들인것처럼 보이는 릿지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보인다.
호기심에 한참을 보다가 계속 길을 내려오니 금강암이 보인다. 이제 다 내려온것 같다.
이 도봉산은 아직은 많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우이암 방면으로 오르는 보문능선이 있고, 또 다락능선과 회룡사가 있는 회룡능선, 그리고 망월사쪽의 길이 있으며 포대능선을 통하여 사패산으로 갈 수도, 그라고 안골계곡을 통하여 의정부로 하산할 수 있었다. 웅장한 바위의 모임인 오봉능선을 다녀보기도 하였다.
잠시 지난 흔적을 생각하며 걷다보니 벌써 길 왼편에 도봉서원이 보인다. 이 서원은 서울에 소재한 현존하는 유일한 서원이란다.
1573년(선조6)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선생의 학문적 사상과 덕행을 추모하고 도학(道學)을 강의하여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창건해서 다음해에 사액(賜額)을 받았다. 1696년(숙종22)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선생을 병향(竝享:위패를 나란하게 모심)하고, 1755년(영조51) 영조대왕의 친필현판을 받아 어필사액서원(御筆賜額書院)이 되었다.
인근의 계곡바위에 우암선생의 친필을 새긴 '도봉동문(道峯洞門)'과 역시 주자의 시를 우암선생이 대자로 써서 새긴 '제월광풍갱별전(霽月光風更別傳) 료장현송답잔원(聊蔣絃誦答潺湲)'이란 암각문을 비롯하여, 김수항, 권상하, 이재 등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남긴 여러 암각문들이 계곡 주변에 남아 있다.
내 눈으로 직접 본것인 우암선생의 글과 김수항 선생의 물에 일부 잠겨있는 고산앙지(高山仰止)암각을 확인하여 보았다.
다시 눈에 들어오는 섹스폰 아저씨, 그리고 아침에 올라가기 시작했던 녹야원방면의 이정표, 헤어지고 다시만나고 하는 반복의 길, 내가 걸어가는 이 진리의 여행길도 그러하리라.
뒤 돌아보니 여전히 산록들은 즐거운 봄의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나를 용서하고 남을 용서하고, 현재의 입장을 남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여보고, 좀 더 넓게 높은 산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리라.
진리를 멀리서 찾지 아니하고 내 자신에서 진리를 찾아 보리라
해가 많이 길어졌건만 이제는 좀 있으면 해가 져버릴 태세가 보인다.
배려를 생각하고, 마음에 남은 번뇌를 씻어내고 진리의 고향을 찾아 다니는 여행길 오늘의 진리여행길도 이렇게 마무리하여 본다.
길 가의 아직은 늦봄을 장식하는 목련의 하이얀 빛이 무척 고와 보인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의 하이얀 빛이 이 밤을 아름답게 수 놓을 것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