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라고 믿고 싶은 비가 오는 날 / 詩: 오광수
조금 맞으며 걷겠다.
아직은 큰 용기가 없어서
옷깃은 세우고 고개는 조금 아래로 숙이고
혹여나 흙탕물이 바지에 튀는 게 싫어 살살 걷겠다
그렇지만 청승스런 모습으로 보이는 건 싫다
큰길로 나오자
쫓기는 차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비가 오면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그래도 건널목 신호등이 빨간색이 아닌 것이 다행이다.
황색신호야 금방 바뀔 테니까
가로수가 모델 같은 포즈로 젖은 나신(裸身)을 드러낸다
내민 젖꼭지들은 꼭 우리 푸들 것만큼 작은데,
얼마나 많은 마음들을 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소망들을 보게 할까?
경이로움에 얼굴을 드니 안경이 빗물에 잠긴다
이것이 봄비라고 믿고 싶다.
들판에서 요동치는 삶의 춤판을 정말 보고 싶고
겨드랑이 속으로 허락없이 들어오는 따슨바람도 느끼고 싶다.
그리고
비를 맞고도 아내가 걱정하던 감기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