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야기 / 오광수
늦가을 저녁 하늘에 노을빛 같은 화롯불을 보며
토실토실 알밤 몇 알이
할머니의 먼먼 이야기 속에서 익어가고
무슨 볼일이셨는가?
장끼 한 마리 갈 줄 모르고 엿듣다가
해거름이 날개 위로 올라타자 놀라 달아나면
조금씩 조금씩 내리던 눈이
보름달 같은 모양을 하고는
돌아오지도 못하게 토끼발자국들을 지워버렸다
하얀 쪽머리를 하셨던 할머니는
명주 치마저고리 깨끗하게 차려입고
저 산에 저렇게 누워계시는데
화로에 불 담고서
토실토실 그 알밤을 집어넣고 기다려봐도
할머니의 먼먼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 고향의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