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가 가무잡잡한
가수 인순이를 나는 좋아한다.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밝게 활짝 웃는 순한 웃음과
우주 전체를 진저리치면서 꿈틀거리게 하는
그녀의 생명력 넘치는 가창력과
열정적인 발랄한 율동은
내 가슴을 뜨거워지게 하곤 한다.
그런데 그녀의 노래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에 쏴 하고 몰려드는 아릿함이 있다.
우리가 안고 있는 6·25전쟁의 상흔(傷痕)하고
맥이 닿아 있는 까닭일 터이다.
그녀의 미국 공연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한번 읽고 나서, 눈을 씻고 다시 읽었다.
내가 놀란 것은
그녀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1999년도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공연을 펼치는
뉴욕의 대표적인 명소,
맨해튼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6·25전쟁 발발 60년을 맞아
참전용사 100명과
16개 참전국 유엔 주재 대사들을
공연에 초청한다는 사실 때문에 놀란 것도 아니다.
그녀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 때문이다.
“저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6·25전쟁 참전 용사들을
모두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번 공연에서 그분들께
한국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자식들에대한 부담감을
평생 가지고계셨다면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놀란 것은
참담한 6·25전쟁 당시
주한 미군이었던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가 당당하게 뱉은 이 말 때문이다.
“우리 군인들이 베트남에서 그랬듯이
사랑은 아무런 이유 없이,
전쟁터에서도 싹틀 수 있잖아요.”
그녀의 흑인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죽었을지 모르고
지금 미국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흑인 아버지가 한국의 여인과 나눈
잠깐의 사랑으로 인해
그녀는 태어났는데
그녀는 그 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리는
아직도 남북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상흔을 가슴에 품은 채 사는 황색인종이다.
아직도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환상에 젖어 있다.
그러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온
혼혈 아이들은 얼마나 놀림을 받으며
외롭고 슬프게 살았는가.
그녀 또한 예외는 아니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가수로서
오늘의 성공을 이루어낸 것은
한 인간의 슬픈 승리이다.
그녀가 한 말은 자기의 슬픈 고백이자,
그녀를 낳게 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당당한 용서와 화해이다.
“저는 6·25전쟁 참전 용사들을
모두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나는 가수 인순이의 신화적인
아버지 찾기라고 읽었다.
가령 홍길동은
자기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부르기 위하여
목숨 걸고 투쟁을 했고,
그리하여 아버지 찾기에 성공을 거두었다.
어머니가
감성적인 밭이라면
아버지는 이지적인 씨앗이다.
아버지는 신(神)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 인간이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기 위해 분투한다는 것은
자기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하려는 것이다.
자기를 버린 아버지,
아니 자기라는 존재가
한국 땅 안에서 자라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르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그 아버지와 화해하는 일은
오직 가슴이 우주를 다 포용할 수 있도록
광활해진 당당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광활한 가슴으로
세상을 용서하고 화해한 만큼,
그녀는 앞으로 더욱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을 터이고,
그 노래는 한 개의 슬픈 신화가 되어
듣는 사람의 가슴을 울릴 것이다.
그녀의 노래는
전쟁으로 인한 상흔을
어루만져 줄 것이고,
다시 또 그러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만방에 전해줄 것이다.
- 동아일보(한승원/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