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의 사랑방 - 오시는 손님들의 영상 작품을 게시하는 공간
Kahlil Gibran
어느 신부의 첫날밤
- 죽음으로 확인한 라일락, 그녀의 애달픈 사랑이야기 -
이 이야기는 19세기 말엽에 북부 레바논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야기에 나오는 한 사람으로부터 전해들은 그대로 여기에 옮겨보기로 한다.
신랑 신부가 촛대를 든 아이들을 앞세우고 성당으로부터 나왔다.
그 뒤로 주례와 손님들이 따라 나섰고, 신랑 신부와 벗들이 양쪽 옆에서
노래를 부르며 줄을 지어 걸었다.
신랑집에 다다르자 잔치가 벌어졌다. 신랑 신부가 널따란 방 윗자리에 앉고,
많은 손님들은 비단 방석 위에 앉았다. 하인들은 상차리기에 바빴고,
악사들이 타는 악기에선 취흥을 돋우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신랑 신부의 행복한 앞날을 비는 축배가 돌아가고, 음악에 맞추어
마을 처녀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흥겹게 춤추는 아가씨들을 바라보면서 계속 술잔을 비웠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손님들은 곤드레만드레가 되어갔다.
한쪽에서는 어느 젊은이가 한 처녀에게 술취한 기분에서
풋사랑을 고백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 젊은 날을 생각나게 해주는 노래를
다시 한 번 타달라고 악사들에게 부탁하는 나이 지긋한 남자도 있었다.
다른 한쪽에선 자기 외아들의 짝이 될 며느리 감을 고르느라
마을 처녀들을 유심히 보고 있는 홀어머니가 있는가 하면,
한쪽 창가에서는 남편이 술에 곯아떨어져 있는 틈을 타서 딴 젊은이와 놀아날
계획을 짜기에 바쁜 여인이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모두가 이 밤을 즐기고 있는 듯싶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이 밤에 즐거워해야 할 신부는 슬픔에 잠긴 눈으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감옥에 갇혀 있는 것처럼 마음 답답한
신부는 방 건너 멀찌감치 혼자 조용히 앉아 있는 한
젊은이에게 틈틈이 눈길을 보냈다.
상처 입은 아픈 가슴을 움켜잡듯 팔짱을 끼고 있는 젊은이에게,
신부의 눈길이 절로 돌아가곤 했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손님들의 취기를 오를 대로 올랐다.
나이 많은 신랑은 벌써 취해 신부는 아랑곳없이 내버려둔 채, 손님들 사이로
돌아다면서 술만 마셔댔다.
신부의 눈짓에 한 처녀가 신부 곁으로 가까이 갔다. 신부는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떨리는 음성으로 소곤거렸다.
"얘, 나 너한테 부탁이 있어. 싸랄림한테 가서 뒤뜰 버드나무 밑에서
내가 좀 보잔다구 말 좀 전해 줘. 꼭 좀 내 청을 들어달라고 해. 안 그러면
나는 당장 죽어버리겠다고 말야.
꼭 해야 될 말이 있어서 그래. 빨리 좀 수잔, 겁내지 말구."
수잔이 신부의 말을 전하자, 싸알림은 목마른 사슴이 멀리 있는 시냇물을
그리듯, 신부가 앉아 있는 쪽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그러지."하고 대답했다.
싸알림 밖으로 나가고 좀 있다가 신부는 술취한 손님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뒤뜰에 나서자, 신부는 이리를 보고 도망치는 어린 사슴처럼, 얼른
뒤를 한 번 돌아보고는, 싸알림이 기다리고 있는 버드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싸알림의 목을 두 팔로 껴안은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신부는 말했다.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서두르고 생각 없이 군 것 정말 미안해요.
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도록 뉘우쳐요. 정말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 외에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요. 제 목숨 다하는 날까지
당신만을 사랑할 거예요.
사람들이 제게 거짓말을 했어요. 당신이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구요.
나쥐비도 나를 속인 거예요. 당신이 자기를 사랑한다구요.
그래서 집안에서 오래두고 계획해 온 대로, 나를 자기의 사촌오빠와 결혼하도록 하려구요.
홧김에 오늘 딴 사람하고 결혼식을 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는 오직 당신이이에요. 당신이 내 진짜 사랑이에요.
이제 오해를 다 풀었기 때문에 죽는 날까지 당신만을 따르려고 여기 나온 거예요.
난 죽어도 거짓과 케케묵은 관습으로 나를 옭아맨 남편한테는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어서 여기를 떠나, 오늘 밤 안으로 먼 바닷가로 가서 배를 타고
남들의 성가심을 받지 않고 우리 둘이서 살 수 있는 나라로 가요.
자, 어서 떠나요. 우리 평생토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만큼 보석도 많이 갖고 있어요.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시죠? 왜 나를 쳐다도 보지 않으시죠?
내 말을 듣고 계신 거예요? 말씀 좀 해보세요, 네?
어서 이곳을 떠나도록 해요, 한시가 급해요."
애원하는 신부의 음성은 생명의 숨결보다 더 따사로웠고,
죽음의 신음소리보다도 더 애절했다.
그것은 갈매기 날개에 스치는 바람소리보다 더 부드러웠고, 파도소리보다 더 은은했다.
그것은 희망과 함께 절망에 떠는 음성이었고, 즐거움과 함께 괴로움에 통곡하는 음성이었다.
그것은 행복과 더불어 불행에 흐느끼는 음성이었고,
삶을 안타깝게 아쉬워하는 한편 죽음을 애타게 바라는 숨소리였다.
말없이 듣고 있는 젊은이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랑과 명예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그것은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명예와 가슴속에 심어져 있는 사랑 사이의 치열한 싸움이었다.
한참만에 젊은이는 무거운 침묵을 깨고 신부로부터는 얼굴을 돌린 채 타이르듯 조용히 말했다.
"모든 걸 다 운명으로 돌리고 운명지어진 곳으로 돌아가 줘. 때는 이미 늦었어.
사람들 눈에 띄기 전에 어서 돌아가 봐요. 사람들이 보게 되면 큰일이야.
내가 없는 사이에 나를 배신했듯이, 결혼한 첫날밤에 제 남편을 또 배신한 여자라고 욕을 할 거야."
이 말을 들은 신부는 모진 바람에 지는 꽃잎처럼 파르르 몸을 떨면서, 피를 토하듯 말했다.
"전 죽어도 돌아가지 않아요. 영원히 저 집을 떠난 거예요.
제가 당신을 배신했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절 버리지 말아 주세요, 네?
우리의 두 마음을 하나로 맺어주었던 힘은 이 세상 어떤 힘보다도 강한 거예요.
누구도 당신을 내게서 빼앗아가지 못해요.
죽음도 우리 두 사람의 영혼의 떼어놓지는 못할 거예요."
일부러 냉담한 채, 젊은이는 자기 목을 끌어안고 있는 신부의 팔을 뿌리치면서
무뚝뚝하게 말했다.
"내게서 떠나가 줘. 당신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나는 지금 다른 여자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어. 나쥐비의 말대로야.
어서 남편에게 돌아가서 충실한 아내가 되어 줘."
그러자 신부는 미친 듯이 대들었다.
"아니, 아니, 아니에요. 난 당신 말 믿지 않아요. 당신은 날 사랑하고 있어요.
날 속이지는 못해요. 내 심장이 뛰고 있는 한, 난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거예요.
이 세상 끝까지라도 당신을 따르겠어요. 더 머뭇거리지 마시고 어서 길을 떠나던가,
아니면 지금 당장 내 목숨을 끊어주세요."
그래도 젊은이는 여전히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내게서 어서 빨리 떠나 줘. 안 그러면 소리를 지를 테야.
그래서 사람들이 이리로 나와 당신에게 창피를 주고,
내가 사랑하는 나쥐비가 당신을 비웃게 만들 테야."
젊은이가 자기 목을 감고 있는 신부의 팔을 억지로 풀어 젖히려 하자,
지금까지는 그토록 의함에 차고 상냥하고 애절하기만 하던 여인은 갑자기
새끼잃은 어미 사자처럼 변하여 외쳤다.
"아무도 내게서 내 사랑하는 이를 빼앗가 가지는 못해요!"
이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그녀는 입고 있던 신부 옷 속에서 칼을 빼어들더니,
번개처럼 빠르게 젊은이의 가슴을 깊숙히 찔렀다. 젊은이는 세찬 폭풍우에
부러지는 연약한 나뭇가지처럼 맥없이 땅바닥에 쓰러졌고,
피 묻은 칼을 손에 쥔 채 신부도 젊은이 위로 엎어졌다.
눈을 크게 뜬 젊은이는 떨리는 입술로 더듬거렸다.
"내게서 떠지 말아 줘, 라일라. 목숨은 죽음보다 약하고 죽음은 사랑보다 약한 거야.
라일라, 당신은 덧없고 고달픈 삶에서 날 구해 준 거야. 당신의 어여쁜 손으로
나를 사슬에서 풀어줬어. 날 용서해 줘. 내가 거짓말을 했아.
손 좀 내 가슴에 얹어 줘. 내 영혼이 드높은 저 하늘로 오르거든,
그 칼을 내 오른손에 쥐어주고서, 내가 스스로 내 목숨을 끊었다고 해."
그는 숨차 하면서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라일라, 난 당신을 사랑해. 당신 말고는 아무도 사랑한 적이 없어.
그렇지만 당신하고 같이 도망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거야.
나, 날 좀 꼭 안아 줘, 라일라!"
간신히 말을 마친 그는 숨을 거두었다.
신부는 신랑 집 쪽을 향해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이리 나와 보세요. 여기에 진짜 결혼식이 있습니다.
신랑 신부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들의 멋진 잠자리를 구경하세요.
이리 빨리 좀 나와 보세요. 여러분께 사랑과 죽음과 생명의 참모습을 보여드릴게요."
신부의 날카로운 음성이 잔치집 구석구석에까지 울렸다.
손님들은 꿈속에서처럼 몽롱한 정신으로 문 밖으로 비틀비틀 걸어나왔다.
신부가 싸알림 위에 엎드려 통곡하고 있는 것을 보자,
모두들 겁에 질려 한 걸음 물러섰고, 누구도 감히 더 이상 가까이 가지를 못했다.
젊은이가 가슴에서 솟는 피와 신부의 손에 쥐어져 있는 칼이
그들 몸의 피를 얼어붙게 한 것 같았다.
신부는 울부짖듯 외쳤다.
"무서워 마시고 이리로 가까이 와 보세요.
이 남자가 정말 내 신랑이고 나는 그의 신부예요. 사랑하기 때문에 죽인 거예요.
여러분의 무지와 전통 때문에 좁을 대로 좁아진 이 세상에서,
우리는 사랑에 걸 맞는 첫날밤 잠자리를 찾다가 이곳을 택한 거예요.
내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팔아 자기를 사랑한다고 새빨간 거짓말로 나를 속이려 했던
지옥의 독사 같은 나쥐비는 어디 있어요.
그렇게 해서 나를 물리쳤다고 생각한 어리석은 여자 말예요.
오늘 밤 여러분을 이곳에 모아놓고, 자기가 내게 선택해 준 남자의 결혼식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이의 장례식을 보게 해 준 여자 말예요.
내 말이 여러분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거예요. 이 땅에 얽매여 있는 여러분은
저 높은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의 노래를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결혼식을 올린 날 밤에 사랑하던 남자를 칼로 찔러 죽인 여자라고 저주받을
내 이름은 한동안 여러분 입에 오르내리겠지요.
그렇지만 먼 훗날, 여러분의 자손들은 나를 축복해 줄 거예요.
언제고 진실을 드러내 주고 정신의 자유를 누리게 해 줄 테니까요.
오늘 나와 결혼식을 한 내 남편이라는 사람, 날 좀 보세요. 말이 결혼식이었지,
영혼과 영혼을 결합시켜 주는 참된 결혼식은 결코 아니었어요.
내 몸은 샀어도 내 사랑은 못 샀지요. 내가 당신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겠지만,
결코 나를 소유하지 못할 당신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 바위에서 물이 날 것을
기다리는 이 나라와 같군요. 물질에 눈이 멀어 목걸이와 팔찌를 얻으려다
목을 베고 팔을 잘라버리는 어리석은 이 나라 백성의 표본이에요.
그러나 아는 지금 당신과 나쥐비를 용서해요. 행복하게 떠나는 영혼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한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난 신부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입에 갖다 대듯,
칼을 자기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날카로운 낫으로 잘린 한 송이 백합꽃처럼, 신부는 젊은이의 곁에 쓰러졌다.
이 끔찍한 광경에 여인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고,
남자들은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을까 해서 다가왔다.
그러자 죽어 가는 신부가 피를 쏟으며 외쳤다.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세요. 우리 두 사람을 따로 떼어놓지 못해요.
만일 우리 둘을 떼어놓는다면 우리의 영혼이 용서치 않을 거예요.
봄이 올 때까지 씨앗을 땅속에 묻어 눈으로부터 보호했다가,
겨울잠에서 깨워 생명을 불어넣어 주듯이, 이 대지가 우리를 품어 지켜주게 내버려두세요."
신부는 차가워진 젊은이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고 속삭였다.
"보세요, 싸알림, 주위를 둘러보세요. 우리의 행복한 잠자리 주위로 다 모인
저들이 우리를 부러워하고 있어요. 나를 묶고 있던 사슬을 다 끊구서요.
자, 우리 같이 저 밝은 해가 있는 곳으로 가요. 그 동안 너무 오래도록
이 어두운 세상에 갇혀 있었어요. 지금은 모든 것이 내 눈앞에서 사라져가고 있어요.
당신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이제 우리 떠나요.
우리의 사랑이 날개를 폈고, 저 밝은 빛 속으로 날아올랐어요."
이렇게 속삭이면서 신부는 숨을 거두었다. 신부의 두 눈은 아직도 뜬 채,
아무것도 보지 않고 젊은이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다.
두 젊은 남녀의 죽음에 압도되어 사람들은 꼼짝도 못하였고,
침묵만이 주위에 내리 깔렸다.
이때에 결혼식 주례를 섰던 신부가 앞으로 나서더니, 죽음으로 한 덩어리가 된
이 한 쌍의 시체를 가리키면서, 크게 소리쳐 말했다.
"죄로 물든 이들에게 가까이 가는 자 화 있을 것이요.
용서받지 못할 이 두 악령들을 위해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눈에 화 있을 것이오.
이 소돔의 아들과 고모라의 딸을 땅속에 묻어주지도 말고,
짐승들이 살을 뜯어먹고 바람이 뼈를 흐뜨러뜨리도록,
저들의 더러운 피가 뿌려진 이곳에 그대로 내버려둡시다.
여러분께서는 이 죄인들로부터 물들지 않도록
어서 이 자리를 피해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지옥의 불길이 여러분에게 닿지 않도록, 지금 당장에 흩어지시오. 여기 남아 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아 교회로부터 파문되고,
다시는 성당에 들어가 하느님께 기도하는 자리에 끼지 못할 것이오."
신부의 말이 끝나자, 수잔이 대담하게 앞으로 걸어나와 신부 앞에 서서,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신부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저는 여기 남아 있겠어요. 날이 밝을 때까지 지켰다가 이들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입맞춘 이 낙원에 고이 잠들도록,
이 버드나무 아래 무덤을 파고 묻어주겠이요.
어서 이곳을 떠나세요, 무지막지한 신부님. 옛부터 돼지는 향불의 향기로운
냄새를 싫어하고, 도둑은 집주인을 무서워하고,
눈부신 아침해가 떠오르는 것을 두려워한다지요?
어서 신부님의 어두운 잠자리로 가보세요.
천사들의 찬송소리는 잔인한 율법과
어리석은 규칙으로 꽉 막힌 신부님의 귀에는 들릴리가 없어요."
사람들은 얼굴이 굳어진 신부님을 따라 하나 둘 다 떠나가 버리고,
수잔 혼자 남아서 고요한 밤에 사랑하는 자식들을 지켜주는 엄마처럼 사랑의
순교자 라일라와 싸알림 곁에서 천사들과 더불어 눈물지었다.
♬On the Way to the Wedding - Asha
Edited by ChimYeun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역시 결혼은 사랑하는사람 끼리 해야 하는데
옛날에는 신랑될사람이나 신부될사람의 의사와는
관게없이 부모들끼리 결정하여 결혼을 하였거든요
저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사건이 이러난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