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의 사랑방 - 오시는 손님들의 영상 작품을 게시하는 공간
더 넓은 바다 The Greater Sea
내 영혼과 나는
멱 감으로 넓은 바다로 나갔다.
바닷가에 다다른 우리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호젓한 곳을 찾아 헤매 다녔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잿빛 바위에 올라앉아
자루에서 소금을 꺼내
바다에 뿌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내 영혼이 말했다.
"저 사람은 염세주의자예요.
딴 데로 가요. 여기선 멱 감을 수 없어요."
우리는 어느 강어귀까지 걸었다.
거기서는 누가 하얀 바위에 서서
보석으로 장식된 상자에서 설탕을 꺼내
바다에 뿌리고 있었다.
"저 사람은 낙천주의자예요.
저 사람도 우리의 알몸을 봐선 안 돼요."
우리는 계속 걸어 갔다.
어떤 사람이 해변에서 죽은 물고기를 주워
조심스레 바다로 다시 놓어주고 있었다.
"저 사람 앞에서도 멱을 못 감겠어요.
인정 많은 박애주의자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그냥 지나쳤다.
저만치서 어떤 사람이
모래 위에 드리운 자신의 그림자를 따라
금을 긋고 있는 게 보였다.
커다란 파도가 밀려와서는 지우고 밀려갔다.
그래도 그는 다시 그리고, 지워지면
또다시 그리기를 되풀이했다.
"그는 신비주의자예요. 딴 데로 가요."
우리는 계속 걸어
작고 조용한 만(灣)에 이르렀다.
거기서는 어떤 사람이 석고 사발에
물거품을 떠 담고 있었다.
"이상주의자예요. 저 사람도
우리의 알몸을 봐선 안 돼요, 절대로."
계속 걸었다.
갑자기 누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바다야, 깊은 바다, 넓고 거대한 바다야."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 이르자
어떤 사람이 바다를 등지고
귀에 조가비를 대고 소리를 듣고 있었다.
"지나가요. 저 사람은 현실주의자야예요.
자기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전체 덩어리에 대해서는 등을 돌리고,
그 부스러기만 갖고 부산을 떨죠."
그래서 또 지나쳤다.
바위 사이로 해초가 무성하게
우거진 곳에 다다르니
머리를 모래에 처박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말했다.
"여기선 멱 감을 수 있겠군.
저 사람은 우릴 보지 못할 테니까 말이야!"
내 영혼이 말했다.
"아뇨, 이제껏 본 사람들 가운데
저 사람을 가장 조심해야 돼요.
결벽주의자거든요."
내 영혼의 얼굴에
갑자기 깊은 슬픔이 번지더니
목소리에까지 스며들었다.
내 영혼이 말했다.
"이만 가요, 우리가 멱 감을 만한 호젓한 곳이
그 어디에도 없군요.
이런 바람에 내 금빛 머리를 휘날리고 싶지 않고
이런 공기에 내 하얀 가슴을 드러내고 싶지도 않아요.
이런 곳에서 내 신성한 알몸을 내보일 수는 없어요."
우리는 그곳을 떠나 더 큰 바다를 찾아 나섰다.
♪ Waterdance / Tibet
Chim y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