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떠나며 가장 가져오고 싶었던 것이 있다. 구름이다. 영국은 해양성 기후에다 바람이 강해서인지 구름의 변화가 유난히 다채로웠다. 터너나 콘스타블 같은 풍경 화가의 그림에 구름의 표현이 풍부한 것도 그런 자연환경과 관계가 깊을 것이다. 특히 기후 변화가 심한 여름날의 구름은 자연이 빚어내는 오묘한 예술작품이다. 소나기가 지나고 맑게 갠 하늘에 피어오르는 구름은 얼마나 신선해 보이는지 한입 베어먹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하늘에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어찌 한 줌이라도 손에 쥘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이곳의 구름도 영국의 구름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왜 나는 영국의 구름이 더 특별하다고 여겼던 것일까. 생각해보니, 그건 구름의 차이가 아니었다. 영국에서는 모처럼 하늘을 보고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잃어버린 것은 구름이 아니라 구름을 바라볼 시간과 마음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마루나 풀밭에 누워 하염없이 구름을 바라보곤 했다. 토끼 모양도 되었다가 백조 모양도 되었다가 구름은 순간순간 모습을 바꾸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새로운 구름들이 눈앞에 밀려와 있었다. 어린 날에 바라보던 그 구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 질문에 정현종 시인은 “내가 잃어버린 구름이 / 하늘에 떠 있구나”라고 대답한다.

   시인들은 누구보다도 구름을 사랑하는 종족이다. 일찍이 보들레르는 구름을 “신이 증기로 만든 움직이는 건축”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사랑한 것은 가족도, 친구도, 조국도, 미인도, 황금도 아니었다. 무엇을 가장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이방인’ 보들레르는 “난 구름을 사랑해. 저기 흘러가는 구름……”이라고 대답했다. 네루다의 『질문의 책』에도 구름에 관한 질문이 여럿 있다.
 
구름들은 그렇게 많이 울면서
점점 더 행복해질까?

우리는 구름에게, 그 덧없는 풍부함에 대해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할까?


   덧없는 풍부함, 그것이 우리가 구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글출처 :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나희덕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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