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내가 좋아하는 영화야!"

 

   그가 말하자 친구는 단박에 이렇게 받아 쳤습니다. "그럼 지루한 영화겠군."

 

   그런데 분명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텔레비전을 꺼버릴 것 같았던 친구는 계속해서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휴대폰이 처지지 않은 마을을 찾아서 떠난 한 여자.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바닷가 마을에서 독특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때까지와는 다른 삶을 발견하는 영화였습니다.

 

   성격이 급해서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액션 영화를 좋아하던 친구가 <안경>이라는 영화를 계속 보고 있는 장면이 그에게는 또 다른 영화처럼 다가왔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었으니까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친구는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의 존재는 까맣게 잊고, 무언가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았죠.

 

나에게도 지루한 곳에서 머무를 수 있는 재능이 있다면 좋겠다.

누가 나에게 영화 속에 나오는 약도 같은 걸 그려주면 좋겠어.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아이처럼 친구가 중얼거렸습니다.

 

   친구가 말하는 약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약도는 그도 간절히 갖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들판에 난 굽은 길 하나를 그려놓고, 그 밑에 "왠지 불안해지는 지점에서 2분만 더 가보라"고 적어둔 그 약도.

 

   초초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내미는 최고의 약도이자,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좌절한 사람들에게 눈물 겨운 위로가 될 약도였죠.

 

   친구의 취향이 변한 것이 한편으로 반가우면서도 친구가 앞으로는 더 이상 액션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것만 같아서 마음이 쓰였죠.

 

   친구에게도 그에게도, 누군가가 잊을 수 없는 약도 하나 그려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런 약도는 누가 그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글 출처 : 저녁에 당신에게(김미라, 책읽는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