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헛살았다 하지 마라
빈손 들고 있어도 논 마지기 있고

참새떼 먹여 살리니
밤이슬 마셔도 배가 부르다


낮이면 밀짚모자에 총알 지나간 군복이라도 입고
일터에 나왔다
다리가 하나라도 가을 들판은 내 안방이지
잃어버린 다리 솔개 밥 되었으니
밥값 제대로 했지

외롭다 하지 마라
살다 보면 가을 하늘에도 구름 한 점 떠돌고
바람이 등을 밀면 백발로도 쫓겨 다닌다


손에 쥔 건 없지만 나락 살찌는 소리에
온몸이 바람처럼 펄럭인다
자식이 따로 있나
온 들에 가득 내 자식이지
아침저녁 고개 숙여 절하는 자식 곁에 두니
공중 나는 새떼 부럽지 않다


서럽다 하지 마라
한 세상 땅을 밟고 살았으니
불쏘시개 되면 재라도 남긴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하늘에서 버림받은 예수도
십자가에서 살길을 열었다

참새들의 하소연.

사람 들이여...
우리가 살집을 없애여 당신들만 잘 살려고
아파트 높이 올리지 말고
옛날대로 함께 살게하여 주시오.
옛날 두툼한 초가집 처마지붕이 그립습니다.
포근하고 따스한 집
우리는 그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먹거리도 옛날로 가고 싶고요.
농약 너무 쳐서 먹을게 너무 없답니다.
벼농사도 자꾸 줄어들고
채소만 가꾸는 비닐하우스만 늘어나니
우리 먹고 살게 없답니다.
우리는 이제 없이 살아
자식도 옛날처럼 많이 낳지 않는 답니다.

짹짹거리며 노래부르고 노닐던
동내 대 밭도 추위에 많이 얼어죽어
우리가 놀자리도 많이 없어 졌답니다.
사람들이여
자유로 살길 아니면 죽엄을 달라고
당신들이 우리 살길 찾아 주지 않으면
영원히 씨가말라 멸종되어 없어 질 겁니다.


나는 허수아비


1, 헐렁한 밀짚모자 깊이 눌러 쓴
가을의 파수꾼 너는 누구냐
세상이 뭐라 해도 제 할일을 다하는
떳떳한 자네 친구 허수아빌세

2, 남루한 누더기를 몸에 걸치고
두 눈을 부릅 뜬 너는 누구냐
남이야 웃던 말던 제 몫을 다하는
소박한 자네 친구 허수아빌세

허이 허이 저리 가거라 짓굿은 참새들아
허이 허이 저리 가거라 벼 이삭 떨어질라
헐렁한 밀짚 모자 깊이 눌러 쓴
가을의 파수꾼 나는 허수아비 나는 허수아비


헐렁한 밀짚 모자 깊이 눌러 쓴
가을의보잘 것 없는 허수아비도
자기가 할일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실천없이 입으로만 떠들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저 보잘 것 없는 허수아비 보다
더 못한 사람이 아니 겠습니까.
우리 모두 비록 작긴 하지만
한 올의 작은 벼씨가 되는 것은 어떨 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