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쓰며 / 박 소향
부치지도 않을 긴 편지를 너에게 쓰며
예전처럼
선뜻 써지지 않는 사연들이 서글퍼져
지금은 자주 가지 않는 우체통 앞을
그저 지나쳐 가는 것인지 모른다
가슴으로 남은 상처들을
우표 한 장으로 싸매어 부치며
눈물을 아끼던 그 때처럼만 살 수 있다면
그래서
삶에 지친 하루의 끝에서
마르지 않은 편지 봉투를 뜯으며
긴 사연을 읽어 줄 너에게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얘기들을
얼마든지 넣어 부칠 수 있는 편지를 쓸 수 있다면
우체국으로 가서
새로 나온 우표를 사고
남 몰래 우체통 안으로 손을 넣어
새하얀 편지를 부칠 것이다
기다리는 마음 지는 해 노을 뒤로 감추며
못이기는 척 도착 할 날짜를 미리 헤이고
괜스레 웃어보다
텅 빈 그리움으로 지친 눈을 떠
맑은 하늘도 볼 것이다
연필 자욱 짙게 남은 노트 뒷장까지
밤새 잠못들고 뒤적이다
새벽이 오는 소리에
고쳐 쓴 편지 봉투를 가슴에 넣고
우체통으로 가서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부칠 수 있다면
나의 오늘은
내일보다 행복할 수 있겠다
박소향 두번째 시집 [분粉]중에서...